[다산칼럼] 잊혀진 포스코의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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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
"나라의 독립은 국기가 상징하고 국방은 군대가 담당하지만 경제의 독립은 철강이 맡는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는 잘 살아보자는 국민의 열망과 합쳐졌다.
종합제철소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우리는 북한에서 찍은 흑백영화로 김책제철소를 보고 금속공학 교과서로 제철 공정을 배웠다.
경영학 교과서 이론대로 규모의 경제 확보와 손익분기점 계산을 통해 제1기 생산규모는 소수점을 지운 103만2000t으로 계산했다.
당시 후진국에는 인도와 알제리에 50만t 생산규모의 제철소가 있었지만 최후진국인 한국이 100만t 규모를 짓겠다는 것은 철강 전문가들에게는 허황한 꿈으로 보인 것 같다.
기술인력과 자본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무시한 한국정부의 과욕으로 비쳐진 것이다.
결국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잡혀 있던 50만t 제철소는 선진국들의 방해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미국,일본,유럽끼리 정한 세계철강시장 분할은 우리의 철강산업을 시발부터 방해했다.
제일 어려운 것은 철강 설비를 사와야 할 외자 확보였다.
결국 해외차관이 어려워 대일청구권 자금에서 1억6200만달러를 조달했다.
우리 조상의 피와 땀의 대가인 이 자금은 결과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쓰인 셈이다.
이제 세계 200대 기업으로 성장한 종합제철소(포스코)는 이렇게 시작했다.
공과대학원 졸업생이 일본제철소에 가서 공업고등학교 기술자의 어깨 너머로 배워온 실력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효율이 좋은 철강공장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박태준 회장에게 자기네도 포항제철을 지어달라고 했다는 부러움은 이제 40년의 역사가 됐다.
지도자의 선견지명과 임직원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철강공장이 됐다.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식이 지난 얼마 전 포항제철의 타당성 검토 책임자였던 김재관 박사의 전화를 받았다.
포스코의 기획과 경제타당성 검토를 책임진 사람으로서,잊혀진 것이 섭섭하다는 뜻이었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금속가공 연구실과 경제분석실의 노력은 1,2차 수요예측과 경제타당성의 성공적인 검토로 세계은행의 표창을 받게 되지만 정작 건설과 경영에만 몰두한 포스코인들은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을 안 한다고 해서 섭섭할 것은 없다.
포스코가 하늘을 항해 연기를 뿜는 한 우리의 보람과 자부심은 하늘 높게 날릴 것이다.
우리나라는 60년대 말 비로소 산업혁명을 시작하지만 당시 많은 기업인은 경제타당성 검토가 무엇인지 몰랐다.
많은 기업인이 남이 성공하니까 나도 한다든가 사장 단독의 아이디어로 하다가 많은 실패를 했다.
제철사업은 아이디어만으로는 안 됐기에 기술검토와 수요 예측 및 자금계획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경제타당성 검토가 필요했다.
타당성 검토가 됐다 하더라도 여러 가정과 현실문제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성공하는 경우보다 많은 것이 보통이다.
포스코의 수요예측과 기술 및 경제타당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우리 경제는 회복할 수 없는 실패를 했을 것이다.
지금도 실시를 전제로 한 형식적인 타당성 검토나 아예 타당성 검토조차 없이 최고경영자의 판단만으로 큰 사업이나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경제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비전문가들의 감정적인 여론이 압도할 때 그 국가의 장래는 없다.
전문가들조차 어렵다고 하는 사업을 성공시키는데는 사업을 맡은 이들의 난관을 돌파하는 추진력이 절대 필요하다.
포항제철소의 건설은 후진국을 벗어나게 한 훈장감이다.
요즈음 사태를 보면서 국가 지도자의 안목과 일치 단결한 임직원의 노력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나라의 독립은 국기가 상징하고 국방은 군대가 담당하지만 경제의 독립은 철강이 맡는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는 잘 살아보자는 국민의 열망과 합쳐졌다.
종합제철소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우리는 북한에서 찍은 흑백영화로 김책제철소를 보고 금속공학 교과서로 제철 공정을 배웠다.
경영학 교과서 이론대로 규모의 경제 확보와 손익분기점 계산을 통해 제1기 생산규모는 소수점을 지운 103만2000t으로 계산했다.
당시 후진국에는 인도와 알제리에 50만t 생산규모의 제철소가 있었지만 최후진국인 한국이 100만t 규모를 짓겠다는 것은 철강 전문가들에게는 허황한 꿈으로 보인 것 같다.
기술인력과 자본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무시한 한국정부의 과욕으로 비쳐진 것이다.
결국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잡혀 있던 50만t 제철소는 선진국들의 방해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미국,일본,유럽끼리 정한 세계철강시장 분할은 우리의 철강산업을 시발부터 방해했다.
제일 어려운 것은 철강 설비를 사와야 할 외자 확보였다.
결국 해외차관이 어려워 대일청구권 자금에서 1억6200만달러를 조달했다.
우리 조상의 피와 땀의 대가인 이 자금은 결과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쓰인 셈이다.
이제 세계 200대 기업으로 성장한 종합제철소(포스코)는 이렇게 시작했다.
공과대학원 졸업생이 일본제철소에 가서 공업고등학교 기술자의 어깨 너머로 배워온 실력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효율이 좋은 철강공장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박태준 회장에게 자기네도 포항제철을 지어달라고 했다는 부러움은 이제 40년의 역사가 됐다.
지도자의 선견지명과 임직원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철강공장이 됐다.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식이 지난 얼마 전 포항제철의 타당성 검토 책임자였던 김재관 박사의 전화를 받았다.
포스코의 기획과 경제타당성 검토를 책임진 사람으로서,잊혀진 것이 섭섭하다는 뜻이었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금속가공 연구실과 경제분석실의 노력은 1,2차 수요예측과 경제타당성의 성공적인 검토로 세계은행의 표창을 받게 되지만 정작 건설과 경영에만 몰두한 포스코인들은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을 안 한다고 해서 섭섭할 것은 없다.
포스코가 하늘을 항해 연기를 뿜는 한 우리의 보람과 자부심은 하늘 높게 날릴 것이다.
우리나라는 60년대 말 비로소 산업혁명을 시작하지만 당시 많은 기업인은 경제타당성 검토가 무엇인지 몰랐다.
많은 기업인이 남이 성공하니까 나도 한다든가 사장 단독의 아이디어로 하다가 많은 실패를 했다.
제철사업은 아이디어만으로는 안 됐기에 기술검토와 수요 예측 및 자금계획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경제타당성 검토가 필요했다.
타당성 검토가 됐다 하더라도 여러 가정과 현실문제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성공하는 경우보다 많은 것이 보통이다.
포스코의 수요예측과 기술 및 경제타당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우리 경제는 회복할 수 없는 실패를 했을 것이다.
지금도 실시를 전제로 한 형식적인 타당성 검토나 아예 타당성 검토조차 없이 최고경영자의 판단만으로 큰 사업이나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경제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비전문가들의 감정적인 여론이 압도할 때 그 국가의 장래는 없다.
전문가들조차 어렵다고 하는 사업을 성공시키는데는 사업을 맡은 이들의 난관을 돌파하는 추진력이 절대 필요하다.
포항제철소의 건설은 후진국을 벗어나게 한 훈장감이다.
요즈음 사태를 보면서 국가 지도자의 안목과 일치 단결한 임직원의 노력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