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에서 소주 8병,맥주 24병을 기분좋게 비우던 술 실력.소주 13병을 마신 적도 있고 낮술로 고량주 5병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음주량이 늘면서 미사를 빼먹고 주사를 부렸으며 몸도 망가졌다. 결국 광주의 성요한병원에서 1년간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주인공은 1999년 10월 종교계 최초로 가톨릭 알코올사목센터를 설립해 9년째 중독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돕고 있는 허근 신부(56ㆍ단중독 사목위원장).알코올 중독자와 가족을 위해 '단주(斷酒) 피정'(19~20일)과 '단주 부부캠프'(26~27일)를 마련하는 허 신부를 16일 서울 중림동 가톨릭출판사 5층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로 술을 끊은 지 10년인데,그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중독자가 된 벤처기업 사장,술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직장인,아이들과 헤어져야 한 주부,연기자,언론인 등등.그러나 중독은 반드시 고칠 수 있고,고쳐야 합니다. 그런 믿음과 희망이 필요해요. "

허 신부에 따르면 중독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독자임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허 신부도 처음에는 알코올 중독임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다 자신이 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하는 김옥균 주교의 충고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치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업(up)'되지요. 그러나 자기 주량을 넘어서면 구토,통증 등의 신체 반응과 함께 '업' 상태가 '다운' 상태로 바뀌면서 우울해집니다. 알코올 중독자 대부분이 우울증을 겪는 것은 이 때문이죠.우울증이 심해지면 자기 연민,자기 비하 등이 겹치면서 자살에 이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자신의 주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해야 합니다. 자기 주량을 넘어서거나,술 때문에 가정ㆍ직장 등에서 문제를 일으킬 정도면 술잔을 놓아야죠."

지금까지 알코올사목센터에서 치료받은 중독자는 1만여명.지난해에는 5200여건의 상담을 통해 중독자와 가족 등 600여명을 치료했고,월 평균 상담건수가 500건에 이른다. 이들 중 70%가량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나머지는 타종교 신자나 비신자다. 사목센터에서 상담한 사람의 70%가 단주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설명이다.

허 신부는 "좀 더 빨리 오면 치료의 가능성이 훨씬 큰데 너무 늦게 와서 손을 쓸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중독자 본인과 가족 모두 희망과 믿음을 갖고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