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단신 복서가 세계 최강자로 거듭나는 모습을 기대해달라"

베이징올림픽 복싱 웰터급(69㎏) 국가대표 김정주(27.원주시청)의 키는 170㎝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낼 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동급 최단신 복서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는 웰터급 복서들의 평균 신장은 180㎝ 안팎. 지난해 시카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드미트리어스 안드라이드(20.미국)는 185㎝다.

김정주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1순위 후보 안드라이드의 얼굴에 펀치를 꽂아넣으려면 팔을 45도 각도 위쪽으로 뻗어야 할 지경이다.

게다가 김정주는 아웃복서다.

흔히 단신 복서는 파고드는 스타일의 인파이터가 많고, 키가 크고 팔이 긴 선수들이 외곽으로 빙빙 도는 아웃복싱을 구사하곤 하지만 김정주는 예외다.

자신보다 10㎝ 이상 키가 큰 선수들 주위를 돌다가 상대가 허점을 보이는 순간 먹이를 포착한 매처럼 펀치를 날리는 게 바로 김정주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그는 웰터급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해왔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2004년 아시아복싱선수권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같은 해 아테네올림픽에선 조국에 8년 만의 올림픽 복싱 메달을 선사했다.

당시 준결승에서 로렌조 아라곤 아르멘테로스(쿠바)에게 10-38 판정으로 지긴 했지만 왼쪽 갈비뼈에 실금이 간 부상을 참고 싸운 김정주의 투혼은 국민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선 1회전 탈락했고, 2005년과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단신이라는 단점을 메우고도 남는 장점은 순발력과 폭발적인 파워다.

힘의 근원은 몸이다.

김정주의 상체 근육은 훈련을 지켜보는 이들의 넋을 잃게 할 정도로 잘 발달돼있다.

육체보다 더 뛰어난 건 머리다.

상지대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 복서 김정주는 경기중 두뇌 싸움에 능하다.

상대 허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상대 선수 가드가 내려가는 순간 폭발적인 속도로 주먹을 날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국가대표 후보팀 감독은 "김정주는 (155㎝ 단신의 펜싱 메달 기대주) 남현희와 비슷하다"고 했다.

김정주의 칼(주무기)은 왼손 훅에 이은 오른손 스트레이트다.

단점은 없을까.

그는 왼손잡이 복서에 약하다.

김정주의 라이벌로 꼽히는 이필영(25.남원시청)이 전형적인 사우스포다.

김정주는 2005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이필영에게 졌고, 다음해 전국체전에선 이필영을 꺾고 우승했다.

김정주의 메달 획득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대회 첫날 대진표 추첨이 끝나기 전까지 복싱 메달 판도를 예상하는 건 무리다.

확실한 건 웰터급 정상이 녹녹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안드라이드는 물론이고, 같은 대회 은메달리스트 논 본줌농(26.태국), 동메달리스트 안드레이 발라노프(32.러시아), 카를로스 수아레즈(쿠바) 등 강적이 무수하다.

하지만 김정주에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정신력이 있다.

아테네올림픽 당시 김정주의 부상 투혼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얼마나 힘든 환경에서 자랐는지도 잘 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중학교 3학년 때 아마추어 데뷔전을 치르는 동안 집에 있던 어머니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린 정주를 키운 건 큰누나 정애(34)씨와 작은 누나 미숙(28)씨였다.

김정주는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포상금 1천만원을 큰누나 결혼 밑천으로 내놓았다.

정애씨는 지난해 12월28일 아들을 낳았다.

김정주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조카 목에 걸어주고 싶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오늘도 하늘 높이 펀치를 힘껏 내뻗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