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수 < 세종연구소 부소장 >

이명박 정부가 내걸었던 4강 외교의 복원 전략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를 겪고 있다. 출범 초기엔 대통령 방미 이전에 쇠고기 협상을 성급하게 마무리하려다 오히려 한ㆍ미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모양새를 남겼다. 한ㆍ일관계의 복원도 독도문제와 교과서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선언을 성급하게 하면서 전략적인 카드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에는 국제 공조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외교현장에서 북한의 외교전에 정밀 대응하지 못하는 최악의 외교력을 노출시켰다. 국가 현안인 독도문제를 놓고는 우방인 미국의 내부 동향조차 파악하지 못하다가 뒤늦은 대응으로 원상 복귀시키는 혼란을 가져왔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 혼란은 성급한 성과주의에 기인했던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이 대통령도 국민의 지지를 빨리 성과로 화답하려는 초조함이 있었다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반성할 정도였다. 이 대통령이 외교 실책을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외교 혼란이 지속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 정책은 구호만 있을 뿐 그 내용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난해 경선 때 한ㆍ미동맹 강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MB 독트린'은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외교에 반영하겠다는 외교안보 종합전략이었다. 그러나 정권 출범 후 'MB 독트린'이 어떻게 구체화됐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외교 혼란의 근저에는 실용외교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큰 몫을 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5월 한ㆍ중ㆍ일 회의에서 일본과 중국의 정책 담당자들이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됐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 정부가 "한ㆍ미관계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면서 한ㆍ미동맹 강화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실용외교를 한다면서 오히려 주변 국가들로부터 대미 편승외교로 오인되는 것은 실용 외교 자체의 실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 국민들도 실용 외교를 '원칙 없는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생각하면서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마저 있다.

이 점에서 정부의 실용외교는 국내외적으로 신뢰를 전부 잃어버린 셈이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용외교를 가다듬으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는 정부가 내부에서 만든 정책안을 일방적으로 제시하자는 것이 아니라,국내외를 설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지침서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둘째,청와대가 외교라인의 중심적인 조정 기능을 못하는 데 있다. 현재처럼 청와대에 외교라인을 종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측근 브레인'이 없는 상황에서는 서로의 눈치를 보거나 경쟁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게다가 외교의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에 따라야 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 예로 쇠고기 파동이나 대북문제의 대응을 보면 정부가 일관된 입장과 신속한 대응체제를 가지지 못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원인이 됐다. 또한 독도문제에서는 청와대,장관,그리고 대사가 서로 조율 없이 강온의 대응책을 주장하면서 일본의 시간 보내기 전략에 말려드는 경우조차 나타났다. 청와대의 조정 기능 약화는 우선 정무와 외교,그리고 전문 부서간의 조율이 하모니를 이루지 못한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차관급인 외교안보수석이 장관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인 힘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 점에서 외교라인의 체제 정비는 시급하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의 외교 혼란을 교훈 삼아 외교의 전략적 내용을 구체화하고,외교라인의 시스템을 재정비함으로써 '신뢰 받는 실용외교'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