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총통(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마잉주(馬英九)는 '청렴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1993년 리덩후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돼 정치권에 대한 사정 및 폭력조직과의 전쟁을 주도하면서 '클린 이미지'를 얻었다.

그는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1998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도전,당시 재선을 노리던 첸수이볜 시장을 눌렀다. 마 시장은 2007년 8월 정치인으로서 위기를 맞았다. 정부기금을 유용한 혐의로 고소당한 것.하지만 그해 12월 최고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아 총통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첸 총통 시절 경제성장이 부진한 데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파고드는 '경제살리기 공약'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7%성장,국민소득 4만달러,7위 경제대국)'과 닮은 '633(6% 성장,실업률 3%,국민소득 3만달러)' 공약이 먹혔다.

181㎝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마 총통은 1950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한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대만에 온 후 대만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각각 법학석사 및 법학박사를 받고 뉴욕주 변호사 까지 지내 영어가 능통하다.

그는 12일부터 파라과이 도미니카공화국 파나마를 방문한다. 정상의 취임 첫 해외방문국 치곤 작은 나라들이다. 거기에 대만의 설움이 있다. 정식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23개국.1992년 노태우 정부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듯 대부분의 나라들이 중국을 잡기 위해 대만을 버린 탓이다. 이들 세 나라는 대만으로선 중요한 외교 파트너다.

대만은 수교국을 늘리기 위해 중국과 외교경쟁을 벌여왔다. 돈으로 외교를 사는 '달러외교''수표외교'라는 소리를 들었다. 대만을 정치·외교적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과의 대립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 총통은 이 같은 소모전을 끝내기로 했다. 중국과의 화해 및 협력을 모토로 내걸었다. 그 바탕은 3불(不)이다. 통일하지 않고 독립하지 않으며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不統,不獨,不武)는 것이다.

마 총통은 이 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수교국과는 외교관계를 더 강화하고 비수교국과는 신뢰관계를 높이는 '활력있고 실용적인' 외교를 펼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중국과 예전처럼 외교경쟁을 벌이지 않기로 함에 따라 비수교국에 저자세로 손을 벌리는 외교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파장이 한국 등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