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해외기업 사냥' 가속도
최근 일본 기업들의 외국 기업 인수♥합병(M&A) 바람이 거세다. 1980년대 미국의 록펠러센터를 사들일 정도로 해외 자산 인수에 열을 올리다가 '거품경제' 붕괴로 퇴장했던 일본 기업들이 두둑해진 지갑을 앞세워 다시 외국의 알짜 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2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들어 일본 기업들이 사들인 외국 기업은 인수가격 기준으로 486억달러(약 53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인수금액 254억달러의 두 배에 육박한다. 같은 기간 미국 기업들의 해외 M&A가 작년 동기 대비 67%,영국 기업은 66% 각각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 이후 신용경색으로 돈줄이 말라 M&A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반면 서브프라임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구조조정과 건실한 경영을 통해 쌓아놓은 현금을 무기로 앞다퉈 해외 기업 인수전에 뛰어들고 있다.

실제 전자소재업체인 TDK는 지난달 독일의 휴대폰업체 에프코스를 18억7000만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이에 앞서 6월에는 제약업체 다이이치산쿄가 인도 최대 제네릭(복제약)업체인 란박시를 46억달러에 인수했다.

일본 최대 맥주회사인 기린은 호주 유가공회사 데어리파머스를 840억엔(약 8150억원)에 인수한다. 기린은 작년 11월에도 호주 음료업체 내셔널푸드를 2940억엔에 사들였다. 1년도 채 안 돼 호주의 대형 식품회사 두 곳을 손에 넣은 셈이다. 이로써 기린은 호주 우유시장 점유율이 63%,요구르트 점유율은 55%로 높아졌다.

'포카리 스웨트'로 유명한 오츠카제약도 지난 5월 프랑스의 대형 음료회사 아루마의 지분 49%를 1200억엔에 인수했다. 삿포로맥주는 최근 캐나다 3위 맥주업체인 슬리먼을 300억엔에 사들였고,조미료업체인 아지노모토는 프랑스 다농의 중국 공장을 273억엔에 인수했다.

일본 기업들이 외국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는 것은 내수시장 정체로 인한 성장 한계를 해외시장 개척으로 돌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보유 현금이 풍부한 제약회사와 국내 시장 포화로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식품업체들이 최근 해외 M&A에 적극적이다. 전문가들은 동남아와 유럽시장 등을 겨냥한 일본 기업들의 M&A 시도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일본이 과거 해외 유명 빌딩 등 상징적 자산을 사들이는 데 열중했다면 지금은 시장 개척이나 수익 창출이란 관점에서 기업을 매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무라증권의 이와사와 세이이치로 수석연구원은 "일본 기업들은 거품경제 시절의 실패를 기억하고 있다"며 "때문에 신중한 태도로 가치 있는 기업만 매수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