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쇼크에 한국이 가장 취약한 이유를 이성태 한은 총재는 환금성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시장이 유독 국제 투기판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솔직할 것이다. 은행의 외국인 소유비중이 70%를,기간 산업에 대해서도 50%가 넘는 유일한 나라다. 저간의 스토리가 궁금해진다. 산은의 리먼 인수 건도 그렇다. 낡은 거품을 사들이자는 데 정부나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거의 아무런 제동이 걸리지 않았던 속사정 말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금융의 세계화,금융허브의 착실한 전진이라고 찬사를 쏟아냈을 정도였다.

민유성 행장의 탓만도 아니다. 대형 IB를 육성하는 것이 국정과제가 된 지 오래다. 서울을 금융허브로 만들자는 구호는 벌써 10년을 메아리 쳤다. 멀쩡한 제조업체들이 환투기에 맛들여 KIKO에 무더기 베팅한 것도 그렇다. KIKO는 500개가 넘는 중견 기업들을 지금 부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미 태산LCD같은 좋은 기업들이 부도가 났고 내일은 또 어떤 기업이 뒤를 이을지 알 수 없다. 중견 제조업까지 투기적 연금술에 말려든 지난 10년간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굳이 시대구분을 하자면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이 그 시발점이다. 월가 IB(투자은행)들의 잔치가 시작되었고 그들을 따라,혹은 그들의 수하가 되어 서울을 방문한 투기세력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고려대의 모 교수는 아예 스스로 투기의 향도자를 자처했을 정도다. 재벌을 때려잡아주기만 하면 좋다는,그래서 '적(敵)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로 투기세력을 안방으로 끌어 들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친북좌파와 극우 투기세력이 동거하는 기묘한 구조가 정착되어 갔다. 이종교배는 그렇게 착종된 것이다.

월가에도 없는 온갖 종류의 경영권 탈취 제도를 법제화한 결과가 바로 '세계적 투기세력의 서울 총집합'이었다. 좌파 정권 10년 동안 가장 잘 나갔던 세력과 집단이 바로 얼치기 386과 금융투기 세력이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벤츠 타는 좌파,타워팰리스 사는 친북파가 바로 그들이다. '자본주의'하면 곧바로 '금융투기'로 되고 만 것은 그것의 심각한 결과다. 그래서 창업은 없고 M&A만 난무하며,기업가는 없고 금융술사만 난무하는 자본주의 조로화 경향이 만연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아래 위가 모두 금융투기와 대박주의에 전염되어 갔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경준에게 사기 당한 것도 그 즈음이다. 지금 노무현씨가 작금의 금융혼란을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일갈하고 있는 것은 어처구니 없다. 바로 자신이 한국에서 그것의 변종을 만들어 냈다. IMF 이후 한동안 한국 금융을 호령했던 어떤 장관의 아들은 그때는 환란 후 구조조정 물건을 싹쓸이했던 아더앤더슨에서,지금은 자리를 옮겨 문제의 리먼 코리아에서 일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잘나갔던 고위층 자제들이 대거 국제IB의 한국 지점에 근무했거나 하고 있는 실로 기묘한 좌우합작이다. 정말 왜들 이러시는지….

이명박 정부도 오십보 백보다. 지금 여권 최고 실력자의 모 자제분은 세계 최고 IB라 불리는 회사의 한국 운영파트 대표다. 민 행장이 산업은행장이 된 것도 리먼 인수 추진에 환호했던 것도 다 그런 배경에서였을것이다. 이력서만 화려한 새 정부의 고위직 인사에 우리가 쉽게 동감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자본주의는 탐욕을 정당화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벌써 일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세의 깃발을 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농업과 제조업은 지금도 세계 최강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자본주의는 한탕주의 아닌 근면.절제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이 난장판 속에서 지난 10년의 탐욕 체제를 어떻게 정리하고,또 어떻게 '경제하려는 정신'을 복구할 것인가.

정규재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