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위기로 국내 실물경기가 침체되고 외화 자금난에 이어 원화 자금난마저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오는 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정책금리를 결정한다. 물가 불안이 여전하고 정책금리를 올린 지 두 달밖에 안돼 정책금리가 이번에 동결될 가능성이 높지만,경기 둔화가 심해지고 있는 만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입'에서 통화정책의 기조 변화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금리인하 기대감 '솔솔'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국내외 경제 여건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산업활동 지표가 악화된데다 민간소비는 지난 2분기 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3%대 후반에 그치는데 이어 내년에도 상당기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적격'으로 분류되는 BBB-급 회사채 금리가 연 11%에 육박할 만큼 올랐다는 사실도 부담이다. 국고채 금리는 연 6% 미만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실제로 조달하는 금리는 이미 큰 폭으로 뛰어 기업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도 계속 높아져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채권시장에선 이미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에 베팅하면서 국고채 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이코노미닷컴은 "한국이 내수경기를 부양하고 기업들의 이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조만간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체이스는 성장률 둔화를 이유로 한은이 내년 1분기 중 정책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분간은 동결 유력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릴 경우 한은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원의 구제금융 통과에도 불구하고 신용경색이 여전하고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전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2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이날 회의에서 금리인하도 검토했다"고 밝혀 통화정책의 변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여건상 오는 9일 금통위에선 정책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월대비)이 지난 7월 5.9%에서 8월 5.6%,7월 5.1%로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은의 물가관리 목표 상한선(3.5%)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원ㆍ달러 환율이 1200원대를 넘어서는 등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물가가 상승해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가 줄어든다. 지난 8월 정책금리를 올린 지 얼마 안돼 금리인하로 방향을 튼다면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는 점도 한은으로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