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지금] 살림살이 팍팍해졌지만…
외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 이모씨(38ㆍ여ㆍ서울 강동구).남편과 맞벌이를 하면서 월 수입은 500만원가량 되지만 요즘 지갑에서 빠져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아 걱정이다. 일곱살,네살 된 두 딸의 양육비로만 매달 150만원이 고정적으로 나가는 데다 최근에는 물가가 올라 생활비도 작년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작년 초 집을 사면서 빌린 은행 대출금의 금리가 최근 부쩍 올랐다는 뉴스에는 한숨만 나온다.

최근 우리 경제 상황에서 행복을 논할 수 있을까. 5%가 넘는 물가상승률,제2 외환위기를 우려할 만큼 급변하는 환율,100만명을 웃도는 청년 실업자….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서민들의 입에서는 "벌이는 작년보다 나아진 게 없는데 돈 들어갈 곳만 늘었다"는 하소연이 나온 지 오래다.
[한국인은 지금] 살림살이 팍팍해졌지만…
◆물가 올라 생활고에 시달려

[한국인은 지금] 살림살이 팍팍해졌지만…
한국경제신문이 중앙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고단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와 비교해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는 응답은 10명 중 1명(11.3%)에 불과한 반면 10명 중 5명가량(46.8%)은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이런 답변은 연령,직업,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40대와 50대 등 장년층의 절반 이상(40대 50.7%,50대 55.3%)이 체감경기가 악화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영업자의 56.7%가 생활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답했으며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층 역시 10명 중 4명꼴(각각 41%,42%)로 살기가 팍팍해졌다고 답했다. 또 '월 소득 200만원 이하'의 60.3%,'월 소득 200만~300만원 미만'의 51.2%가 생활 형편이 악화됐다고 답했으며 '월 소득 500만원 이상' 고소득자의 38.7%도 같은 답을 내놨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생활 형편을 어렵게 만든 것은 물가였다. 전체 응답자의 61.8%가 '물가 상승'을 생활 형편 악화의 주범으로 꼽았다. 다음으로 '소득이 줄어서'가 18.9%를 차지했으며 '세금과 이자가 많아져서'도 10.4%에 달했다. 본인이나 배우자의 실직을 꼽은 이도 6%나 됐다.

◆그래도 희망을 꿈꾼다

이처럼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10명 중 6명에 이르는 설문 결과는 다소 의외다. '현재 행복한가'란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1.3%가 '행복한 편이다'(49.6%),'아주 행복하다'(11.7%)고 답했다. '행복하지 않다'는 13.2%였고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는 중립 의견이 25.4%였다. 연령대별로는 50대를 제외한 20ㆍ30ㆍ40대 모두에서 행복하다는 응답률이 전체 응답 비율보다 높았다. 20대는 67.1%,30대는 65.5%,40대는 64.5%가 스스로 행복한 편이라고 답했다. 모든 소득 수준별로도 행복하다는 답이 그렇지 않다는 답보다 많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록 살림살이가 어려워졌지만 우리 국민들이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경기 침체로 주변의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호황기에 비해 '상대적 빈곤감'이 줄어든 것도 한 요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번 설문 조사결과는 국민들이 경제적인 요인 외에 가정과 건강 등 다양한 부분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정부 정책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를 시사해준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지금] 살림살이 팍팍해졌지만…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