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번져 나가고 국내 경제도 어려워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국민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들은 '작은 정부,큰 시장'을 기조로 한 이명박 정부의 성장 우선 정책에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국제 경쟁력과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과거보다 높아진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현 정부의 초기 국정 혼란도 '고소영 내각' 논란과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 주로 인사와 외교 분야에서 비롯됐을 뿐 경제정책 상의 큰 오류는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치를 하루 속히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물가를 안정시켜 국민의 생활고를 줄이고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높여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경제 장래 '낙관적'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61.7%가 우리 경제의 성장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낙관적이라고 대답했다. '매우 낙관적'이라는 응답이 3.5%,'어려움이 있지만 낙관적'이라는 응답이 58.2%였다. 조사를 진행한 김지연 중앙리서치 전략2팀장은 "최근 국내외 경제 상황에 비춰 볼 때 다소 의외의 결과"라면서 "우리 경제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장기 전망까지 불투명하다고 보는 국민은 적다는 의미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와 이후 몇 차례 경기 침체가 반복되면서 국민 스스로가 불황과 위기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됐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짧은 시간에 산업화를 이룬 역사적 경험이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오일 쇼크와 외환위기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웬만한 위기는 이겨 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긴 것 같다"고 진단했다.

◆3~4년 내(임기 내) 회복

우리 국민은 또 '분배'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둔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인식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떨어졌을지언정 지난해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민심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다.

'현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정책'으로 '경제 성장'(27.0%)을 꼽은 의견이 '공정한 분배'(13.6%)나 '사회복지 향상'(11.7%) 등 분배 지향적인 정책을 택한 응답보다 많았다. 또 응답자의 17.3%가 1~2년 내,41.6%가 3~4년 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답해 현 정부의 임기 중에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임양택 한양대 경제금융대학장은 "지난 정권의 실패를 통해 국민들은 성장을 위해서든 분배를 위해서든 시장 원리에 기초한 경제 정책이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이명박 정부의 기본 철학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 안정,정책 신뢰 회복부터

우리 경제의 성장 전망은 낙관적이며 현 정부의 임기 안에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들은 정부가 우선 물가를 안정시키고 정책의 신뢰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다.

최대 경제 현안을 묻는 질문에 전체의 43.9%가 '물가 안정'을 꼽았다. '실업 해소'(18.0%) '노사관계 선진화'(13.4%) '환율 안정'(5.9%) 등은 모두 다음 순위로 밀려났다. 그만큼 현재 국민들이 높은 물가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국제유가 상승 등 외부적인 요인만 탓하지 말고 대학 등록금과 학원비,전셋값 등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항목의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 회복과 세계 금융위기 대응책 마련 중 보다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53.1%가 정책의 신뢰 회복이 먼저라고 답했다. 금융위기 대응책이 먼저라는 의견은 44.4%에 그쳤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어떻게 조사했나>

한국경제신문사가 중앙리서치에 의뢰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것은 현 경제 상황을 국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우리 경제의 위기감도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의 심리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2~3일 이틀간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설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