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도 발해의 영토였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고구려식 온돌시설을 갖춘 발해의 왕성급 건물지와 성터 유적이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강 근처에서 발굴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학ㆍ고고학ㆍ민속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지난달 3일부터 연해주 중북부 추구예프카 지구 콕샤로프카 마을의 평지 성(城) '콕샤로프카-1'을 발굴 조사한 결과 발해시대의 대규모 유적과 고구려 및 발해 양식의 유물을 다수 확인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은 물론 발해의 영역이 연해주 중북부까지 확장됐음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연구소는 평가했다.
연해주 북쪽에 자리잡은 이 성은 우수리강과 그 지류인 콕샤로프카 강을 낀 평지성으로 성벽 총길이 1645m,넓이가 16만㎡에 이를 만큼 크다. 현재 남은 성벽의 최고 높이는 6m,너비는 10∼14m로 안쪽에 돌을 쌓고 그 안팎에 흙을 발랐으며 성벽과 내부 등 성 전체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이 중 북문에서 가까운 성 내부 북쪽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고구려 온돌을 계승한 발해시대의 전형적인 온돌시설을 갖춘 대규모 건물지와 유물이 대거 발견돼 상경성이나 서고성같은 발해의 궁성에 비견되는 건물과 관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그 근거로 모래와 점토를 한층한층 쌓아 대지를 1m 이상 돋운 위에 건물을 세운 점,전체적으로 '曲(곡)' 또는 '由(유)'자형을 이루는 온돌 구조,반듯하게 다듬은 판석을 초석으로 사용한 점,대규모 담장 시설과 발해시대에는 귀했던 기와가 발견된 점 등을 들었다. 이 정도의 건물 크기와 위상이면 현재의 도청에 해당하는 행정치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온돌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양식은 전형적인 발해시대 것임은 물론 고구려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주목된다. '曲'이나 '由'자형 온돌 구조는 궁성에서만 보이는 발해의 전형적인 형식이며 'ㄱ'자로 꺾어 건물 밖으로 굴뚝을 빼내는 구조 역시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인 집안 동대자(東臺子)에서 출토된 온돌 구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또 적갈색 띠고리 손잡이가 달린 토기인 대상파수호(帶狀把手壺),주둥이가 안쪽으로 오므려진 항아리 모양 토기인 내만구연호(內彎口緣壺) 등은 형태는 물론 제작기법도 고구려 전통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 보통 청자보다 굽이 넓은 해무리굽 청자는 9세기 무렵 중국 저장성 월주요(越州窯)에서 나온 것으로 완도의 청해진 유적에서도 다수 출토돼 당시 발해의 폭넓은 국제 교류를 짐작케 한다.
아울러 사람을 새긴 토기편과 도가니에 금을 녹여 물건을 제작한 금도가니 등 당시의 수준 높은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들도 발굴됐다. 이 중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을 새긴 토기는 마치 강강술래를 연상시킨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김 소장은 "이번 발굴로 그간 발해 영역을 한카호(흥개호) 남쪽으로 한정하려는 러시아 학계의 주장을 반박하고 연해주 중북부까지 발해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를 확보했다"면서 "앞으로 이 지역에 대한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학ㆍ고고학ㆍ민속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지난달 3일부터 연해주 중북부 추구예프카 지구 콕샤로프카 마을의 평지 성(城) '콕샤로프카-1'을 발굴 조사한 결과 발해시대의 대규모 유적과 고구려 및 발해 양식의 유물을 다수 확인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은 물론 발해의 영역이 연해주 중북부까지 확장됐음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연구소는 평가했다.
연해주 북쪽에 자리잡은 이 성은 우수리강과 그 지류인 콕샤로프카 강을 낀 평지성으로 성벽 총길이 1645m,넓이가 16만㎡에 이를 만큼 크다. 현재 남은 성벽의 최고 높이는 6m,너비는 10∼14m로 안쪽에 돌을 쌓고 그 안팎에 흙을 발랐으며 성벽과 내부 등 성 전체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이 중 북문에서 가까운 성 내부 북쪽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고구려 온돌을 계승한 발해시대의 전형적인 온돌시설을 갖춘 대규모 건물지와 유물이 대거 발견돼 상경성이나 서고성같은 발해의 궁성에 비견되는 건물과 관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그 근거로 모래와 점토를 한층한층 쌓아 대지를 1m 이상 돋운 위에 건물을 세운 점,전체적으로 '曲(곡)' 또는 '由(유)'자형을 이루는 온돌 구조,반듯하게 다듬은 판석을 초석으로 사용한 점,대규모 담장 시설과 발해시대에는 귀했던 기와가 발견된 점 등을 들었다. 이 정도의 건물 크기와 위상이면 현재의 도청에 해당하는 행정치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온돌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양식은 전형적인 발해시대 것임은 물론 고구려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주목된다. '曲'이나 '由'자형 온돌 구조는 궁성에서만 보이는 발해의 전형적인 형식이며 'ㄱ'자로 꺾어 건물 밖으로 굴뚝을 빼내는 구조 역시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인 집안 동대자(東臺子)에서 출토된 온돌 구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또 적갈색 띠고리 손잡이가 달린 토기인 대상파수호(帶狀把手壺),주둥이가 안쪽으로 오므려진 항아리 모양 토기인 내만구연호(內彎口緣壺) 등은 형태는 물론 제작기법도 고구려 전통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 보통 청자보다 굽이 넓은 해무리굽 청자는 9세기 무렵 중국 저장성 월주요(越州窯)에서 나온 것으로 완도의 청해진 유적에서도 다수 출토돼 당시 발해의 폭넓은 국제 교류를 짐작케 한다.
아울러 사람을 새긴 토기편과 도가니에 금을 녹여 물건을 제작한 금도가니 등 당시의 수준 높은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들도 발굴됐다. 이 중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을 새긴 토기는 마치 강강술래를 연상시킨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김 소장은 "이번 발굴로 그간 발해 영역을 한카호(흥개호) 남쪽으로 한정하려는 러시아 학계의 주장을 반박하고 연해주 중북부까지 발해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를 확보했다"면서 "앞으로 이 지역에 대한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