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계의 축'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윤종석 외 옮김/ 베가북스/ 398쪽/ 2만원

현대인은 당면한 과제들에 억눌려 거시적 아젠다를 조망해보는 여유를 갖기 어렵다. 일상의 바퀴를 잠시 멈추고 차분히 앉아 '큰 그림'을 그려주는 책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는 경직된 사고를 부드럽게 해주고 비즈니스 의사결정과 중·장기 전략 수립에도 도움을 준다. 문제는 과연 어떤 책이 우리 사고의 지평을 시원하게 넓혀주면서 알찬 정보를 동시에 제공하느냐 하는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념대립과 냉전,테러리즘의 공포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20세기는 인간의 잔혹함이나 비극으로 점철된 듯 보인다. 그러나 파리드 자카리아의 <<흔들리는 세계의 축-포스트 아메리칸 월드>>는 이 세기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편안하고 유복한 번성기였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오늘날 어지러운 국제정세와 금융을 포함한 국제경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포린 어페어즈>의 최연소 편집장이며 국제문제의 앙팡 테리블인 저자는 지금 <뉴스위크> 편집장으로 절정의 실력과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의 박학다식과 예리한 분석은 빛을 발한다.

150년 가까이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의 쇠퇴와 '나머지(the rest)'로 불리는 신흥세력들의 부상이 이 책의 주제다. 하긴 미국도 힘을 잃고 비틀거릴 수 있다거나 그 대안적 세력이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변화에 관한 '화무십일홍'식의 보편적인 얘기만이 아니다. 미국이 유일무이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던 역사적 배경,어디서 어떤 착오로 그 힘이 쇠퇴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는가 하는 구체적 사정,지구촌 경제와 정치의 축은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하는 예측,평화와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 미국이나 세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의 지침까지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놀라운 발견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어려서 인도를 떠나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한 지성인이다. 신흥세력의 대표로 지목된 중국과 인도의 본격적인 부상 가능성에 대해 그는 신중하면서도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특히 두 나라의 인구 상황으로 볼 때 강대국으로의 변신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아무리 적은 숫자라도 거기에 25억을 곱하면 엄청난 숫자가 된다"는 흥미로운 논리다.

이민자로 성공한 저자이기에 미국의 '길고 짧음'을 발견하는 데 좀 더 예리하고 중립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축이 흔들리는 세계'에서 미국이 살아남기 위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여섯 개로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예리함과 공정성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과 인도를 위시한 '나머지 세계'를 정치·경제·문화·역사적으로 바라보는 눈도 아시아의 피와 아메리카의 교육을 함께 받은 다문화 지식인답게 치밀하고 날카롭다. 고국인 인도에 할애한 챕터의 내용은 여느 단행본에 못지 않은 해박함과 깊이,재미있는 정보로 가득하다.

미국에 한국은 극히 사소한 변방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 미국은 '도저히 사소할 수 없는' 빅 이슈다. 짝사랑이지만 그것이 정치와 경제 및 외교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세상의 축은 흔들리고 힘의 균형은 깨질 것이니 '앞으로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와 여타 신흥세력조차 우리에겐 사소할 수 없는' 다극화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오로지 미국에 대처하기에도 진땀을 흘렸던 우리로서는 몇 배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만 새로운 세계의 미아가 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국회와 정부 지도자들,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임원들,각 분야의 이노베이션을 주도하는 연구자들이 이러한 세계의 변화에 몸을 맞추는 것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미국에서 올해 이 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태평양을 넘어 우리에게도 쓸모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앵글로색슨의 우위 및 그들의 실수와 패착,유럽보다 앞섰던 중국의 문화적 진취가 중단되고 깊은 잠에 빠진 내력,왁자지껄한 민주주의의 땅 인도,누구나 할 말을 하고 사는 다극화 세계와 동반성장의 미래,국가나 군대의 힘을 대체하게 될 다자간 합의와 정당성….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의 축이 흔들릴 때 넘어지지 않으려면 로마의 격언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평화를 원하는가,그러면 전쟁에 대비하라.'

< 주창돈 삼성금융연구소 전략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