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자학적 역사관 바로잡고 국가 정통성 세워야"

반 "現 교과서 금서 취급은 정치 권력 눈치보기"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고교 역사교과서 수정을 위한 49개 항의 '서술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으며, 교육과학기술부 또한 '역사교과서 전문가협의회'를 통해 개별 표현을 심의하고 11월 말까지 최종안을 마련한 뒤 내년 3월부터 수정된 교과서를 활용한다는 일정을 마련했다.

근·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민족사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을 갖도록 편찬돼야 한다는 게 국사편찬위와 보수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일부 교원단체에서는 "국가에서 특정화시킨 서술을 통해 한 가지 시각에서 가르치라는 것은 다양한 가치를 가르쳐야 할 시대정신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조 역시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과 집필진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검인증 교과서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물론 정부가 한 번 승인한 교과서라고 해서 두 번 다시 손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사실관계의 오류를 시정하는 등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뤄져야 하며, 교육 목적상 꼭 필요한 경우 정부가 수정에 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 '좌(左)편향'이라는 비판을 받는 근·현대사 교과서를 바로잡는다며 세부적인 서술방향을 내놓은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역사교과서의 수정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밝힌 합리적 기준"

역사교과서 수정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교과서의 경우 다양성보다 보편성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특히 검인정 교과서라고 해서 자의적 역사서술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교과서는 한 나라 국민으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습득하는 공교육에 활용되는 만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성이 생명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념적 편향성을 방지하고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사편찬위의 가이드라인은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합리적 기준으로 평가한다.

논란의 핵심인 '현대사회의 발전'단원에서는 특정이념에 치우친 시각을 지양하라고 밝힘으로써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새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는 식의 서술은 설 땅을 잃게 됐으며, 한국전쟁과 관련해서도 북한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라고 권고함으로써 나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한다.

이번 기회에 자학적 역사관을 바로잡고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운 교과서 제작에 국민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금서 취급은 지나친 정치권력 눈치보기"

이에 대해 반대 쪽에서는 교과부가 직제에도 없는 이른바 전문가협의회란 걸 급조해 근·현대사 교과서 직권 수정에 들어간 것은 절차와 관례는 물론 학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짓밟는 행태라고 지적한다.

시비의 대상인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확정한 준거안과 서술방향에 따라 집필된 것들이며, 특히 이승만·박정희 정권이나 6·25 전쟁 등에 대한 기술 역시 이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꼬집는다.

교과부가 몇 년 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승인해 준 책들을 정권 바뀌었다고 뜬금없이 금서 취급을 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정치권력 눈치보기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한다.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 정부가 수정에 관여할 수는 있겠지만,그것은 객관적 사실관계의 오류 등에 국한돼야 한다며 정부가 역사의 서술관점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자 교육의 정치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 "긍정적인 역사관으로 우리의 미래 건강하게 길러내야"

역사 교육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미래 주역들에게 민족사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을 길러줌으로써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만큼 역사교과서는 학자 개개인이나 특정 학파의 주장보다는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와 국가적 지향점을 담아야 마땅하다.

그런 맥락에서 국사편찬위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편찬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기존 교과서의 경우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인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수준을 넘어 우호적인 대목이 많은 등 좌편향돼 있는 실정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이번에 제시된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교과서에 반영하는 일이다.

교과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수정 권고안을 주면 기존의 집필진은 이를 참고해 교과서를 수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교육 당국은 집필진이 가이드라인을 잘 반영해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도록 배경과 취지를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존 집필진은 가이드라인을 거부해서는 안 되며, 보다 긍정적인 역사관으로 우리의 미래를 건강하게 길러내는 데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자학적 역사관을 바로잡고 자랑스러운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지침 = 국사편찬위원회가 10월16일에 내놓은 교과서 수정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49개 항의 구체적인 교과서 서술방향이 담겨있다.

편향성 대신 공정성 강조, 객관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의 역사 서술, 정통적인 학설 수록,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경우 각각의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 제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지 말고 발전성과를 술할 것 등이 골자다.

국사편찬위는 8월1일 학계중진 10명으로 '한국사교과서심의협의회'를 설립,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6종의 수정 타당성 검토작업을 벌여왔다.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사에 관한 자료를 조사·수집·보존·간행·연구·편찬하는 국가기관.

광복 직후 민족사료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를 인수받아 1946년 3월 경복궁 뒤뜰 집경당에서 국사관으로 출범했으며 1949년 3월 직제 개편을 통해 국사편찬위원회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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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10월17일자 A12면

앞으로 역사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국가임을 명확히 서술해야 한다.

또 북한 정권의 성립과 변화 과정은 비판적인 면과 함께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북한 자료는 체제 선전용임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인용해야 한다는 방향도 제시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좌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고등학교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와 관련해 국사편찬위원회가 이 같은 서술 방향을 제시함에 따라 이를 토대로 이달 말까지 수정안을 마련하겠다고 16일 발표했다.

심은석 교과부 학교정책국장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보고한 서술 방향은 교과서 수정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라며 "이를 토대로 문제가 되고 있는 100여개 항목에 대한 수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는 49개 항의 교과서 서술 방향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이승만 또는 이승만 정부의 역할을 서술할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과 독재화와 관련한 비판적인 점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도록 했다.

또 대한민국이 성취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깊은 상관 관계가 있음을 교과서에 담아야 한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주체사상 및 수령 유일체제의 문제점,경제정책의 실패,국제적 고립 등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인권 억압,식량 부족 등 정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도 반영할 것으로 지적됐다.

정태웅 한국경제신문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