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무차별 매도하면서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낼 만큼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이 튼튼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일고 있다. 한국투자공사(KIC)가 메릴린치에 투자하고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할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끝나면 경제 강국으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원ㆍ달러 환율이 1400원대로 치솟고 코스피지수가 1000대로 주저앉자 이 같은 기대감이 착각이었다는 의견이 오히려 지배적이다. 한국의 펀더멘털은 생각보다 허약하며 자칫 안일하게 대응하다가는 일부 신흥국들처럼 국가 부도 사태에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3일 금융감독 당국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이달 들어 국내 주식시장에서 내다판 주식은 4조4000억원어치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외국인이 계속 국내 주식을 처분하면 올해 월간 최대 매도 규모인 5조1651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지금까지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 규모는 34조3000억원에 이르러 1992년 증권시장 개방 이후 최대 규모다.

외국인이 최근 들어 채권마저 팔면서 '셀 코리아(Sell Korea)'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 8월에는 7160억원,'위기설'이 나돌았던 9월엔 4조7329억원어치의 국내 채권을 순매수했지만 이달 들어서는 3조원어치 이상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탈 코리아' 조짐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국가'가 아니라 '위험이 상당히 높은 나라' 대접을 받고 있다. 한 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외국에선 한국이 아이슬란드 파키스탄과 동유럽 일부 국가 등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한 나라들보다 약간 사정이 나은 나라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인 외평채 CDS(신용부도스와프) 스프레드는 최근 500bp(1bp=0.01%포인트)에 근접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보다 훨씬 높게 형성돼 있다.

주요 경제지표를 보면 외국의 이 같은 냉대를 근거없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상수지는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된다. 경상수지 적자 규모도 지난 8월까지 126억달러에 이른다. 반면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은 가파르게 줄어 이제 거의 받을 돈이 없다. 연말께면 순대외채권이 마이너스로 돌아서 순채무국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안에서도 곪아 들어가 한국은 전형적인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다. 은행은 외국은행들로부터 빌린 달러를 갚지 못해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5%까지 치솟았으며 내년에는 2~3%대로 높아질 수 있다. 부동산 경기가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지고 미분양 주택이 15만채를 웃돌면서 건설사들은 자금이 거의 고갈된 상태다. 가만 놔두면 건설사 5개 중 하나는 도산하고 이는 고스란히 은행과 저축은행 부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건설업종 외 다른 업종에서도 이미 몇몇 기업은 도산 직전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