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0.75%포인트 내린 것은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은은 그동안의 여러 대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금융시장이 갈수록 추락하는 데다 실물경제도 심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확인되자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가계와 중소기업의 이자부담은 한국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킬 것이라는 판단도 이번 금리인하의 배경이 됐다.

두바이유 현물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내려오는 등 국제유가가 안정된 점도 금리인하를 도왔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이런 조치가 경제위기 극복에 어느정도 기여할 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내부적인 요인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기 침체라는 대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은, 파격적인 금리 인하
한국은행의 이번 금리인하 폭은 시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음달 7일 예정돼 있는 정례 금통위 회의에서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은 많았지만 임시 금통위 소집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개최한 것은 지난 2001년 9.11테러 당시 이후 처음이다.

한은은 9.11테러 직후인 2001년 9월19일 임시 금통위를 소집해 기준금리를 4.50%에서 4.0%로 내린 바 있다.

금리 인하폭 0.75%는 파격적인 것으로 한으로서는 이렇게 크게 내린 적이 없었다.

한은은 그동안 경기 여건상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인하 자체가 채권시장에서 자본유출을 초래해 환율을 끌어올리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지적하곤 했다.

따라서 금리를 내리더라도 0.25%포인트씩 서서히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한은은 예상과 달리, 시장에 충격을 주는 방법을 택했다.

예상수준을 뛰어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금리 서둘러 내린 이유는
한은이 서둘러 금리를 0.75%포인트 내린 것은 경제가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와 유럽 등 각국이 위기대응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세계 금융불안은 여전히 증폭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거세게 흔들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24일 1,000선이 붕괴하면서 세자릿수로 주저앉았다.

이 지수는 전날보다 110.96포인트(10.57%)나 폭락한 938.75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지수가 1,0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5년 6월29일 999.08 이후 3년 4개월만에 처음이다.

지난 주말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달러당 15.20원 상승한 1,424.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4거래일간 109원 급등하면서 1998년 6월16일 1,430.00원 이후 10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런 끝없는 금융불안은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통계에 따르면 전기대비 성장률은 3분기에 0.6%로 2004년 3월의 0.5% 이후 가장 낮았다.

내수와 투자는 이미 바닥권으로 떨어진지 오래됐다.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0.1% 늘어나는데 그쳤다.

설비투자는 2.3%, 건설투자는 0.3% 각각 증가하는데 머물렀다.

또 지난 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시중의 대출자금 금리는 계속 올라 중소기업과 가계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금리 전격 인하의 요인중 하나로 꼽힌다.

기준금리는 부동산시장의 붕괴를 막는데도 어느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시장마저 붕괴되면 한국경제의 위기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환율불안.물가상승 우려
가장 걱정되는 것은 환율불안과 물가상승이다.

금리하락은 국내 채권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촉진하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환율을 더욱 끌어올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금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런 부담은 상당히 줄어들게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오는 28일과 29일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FRB가 기준금리를 1.5%에서 1.0%로 낮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2004년 6월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다음달 6일 기준금리를 연 3.75%에서 0.5%포인트 내릴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인하는 통화량을 늘리면서 물가불안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유가가 뚝 떨어지면서 이런 부담은 상당히 줄었다.

지난 24일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2.07달러 내린 56.47달러로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도 배럴당 3.69달러 내린 64.15달러로 마감했고 런던 석유거래소(ICE)의 브렌트유 선물 가격 역시 배럴당 3.87달러 하락한 62.05달러로 장을 마쳤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의 환율 상승은 금리 문제보다는 달러 유동성, 달러 유출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금리 인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 투자심리 개선에 효과
한은의 0.75포인트 금리인하는 선제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시장의 요구에 부응한 것으로 투자심리의 급격한 악화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내리는 동시에 다른 유동성 대책들을 패키지로 내놓음으로써 시장의 심리의 급격한 악화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가계, 중소기업 등의 금리부담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상무는 "다른 국가들이 이미 0.5%포인트, 1.0%포인트 이상씩 금리를 내린 상황에서 이번 금리 하나만으로 효과를 보긴 어렵고 해외 요인도 고려해야 하지만 0.75%포인트 인하가 대내적인 요인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금리인하 조치가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글로벌 신용경색과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한국의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는 서로 주고받으면서 짓누르는 악순환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이런 경제충격이 왔을 때 회복하는데는 4∼5년 걸린다"면서 "특히 한국은 수출 둔화에 따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이준서 기자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