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개정 늦어져 계약 날릴뻔 … '先심사 後개정'으로 살렸죠

"제조업은 공장 인허가를 받아 첫 삽만 떠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

'규제의 숲'으로 지칭되는 국내 기업환경에서 창업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각종 인허가 제도에 대한 지식과 정교한 노하우가 없다면 사업가로서 첫발도 떼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97년부터 무료로 공장설립 컨설팅을 해온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지원 성공사례를 통해 제조업 창업자를 위한 '실패없는 공장 설립 노하우'를 짚어본다.


"하마터면 10년간 250억원짜리 납품기회가 날아갈 뻔했죠."

자동차용 의자 제조업체인 탑엔지니어링.최근 전북 익산에 대지 2079㎡,건축면적 1599㎡ 크기의 의자 공장을 신축한 이 회사 송정상 대표(39)는 올해 초 공장 승인 과정에서 겪었던 고초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2007년 개정돼 올해부터 규모 1만㎡ 미만의 공장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절차가 면제됐는데도 조례 개정이 안 됐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공장승인 심사를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로부터는 '공장 확보가 안 되면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떨어진 상황.송 대표는 "회사 존폐가 달려 있는 실정에서 중앙부처는 지자체의 심사 권한 유무를 결정하지 못하고 지자체는 '조례가 개정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해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송 대표가 벼랑 끝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산업단지공단 공장설립지원센터의 '무료 컨설팅' 덕분이었다. 법률 개정에 따라 조례를 바꾸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만큼 우선 심사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당시 건설교통부로부터 '선심사 후개정' 유권해석을 이끌어낸 것.회사는 결국 공장 설립 승인 신청 한 달 만에 설립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월 매출이 3000만원에 불과하던 업체가 매출을 10배로 올릴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순간이었다.

충북 제천에 있는 천연 유기질 비료 생산업체인 대농도 기사회생한 사례.이 회사는 '축산폐기물처리업'(유통)으로 분류돼 규정상 공장 설립 승인을 받지 못했다가 창업 착수 3년반 만인 지난 6월 제조업으로 인정받았다. 제조업 경험이 없다 보니 땅만 있으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제조업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도 모른 채 공장 땅을 찾기 위해 제천시를 훑고 다녀다"며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등기부 등본 수백 곳을 뗀 탓에 부동산 사기꾼이라는 얘기까지 들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잘나가던 축산사료 유통업을 제쳐놓고 돌아다니느라 날린 돈만 4억원에 달했다.

돌파구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난해 8월 초상집에서 만난 산단공 직원으로부터 산업분류를 다시 해보라는 제안을 접하고 나서다. 산단공과 함께 1145개에 달하는 산업분류 코드표를 검토하고,통계청에 질의서를 보내는 등 제조업 분류 가능성을 타진했다. 축산분뇨 수거 수수료 수입보다 비료제조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비중이 더 크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결국 시청 담당직원과 '기타비료 및 질소화합물 제조업'으로 볼 수 있다는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장훈 산업단지공단 공장설립지원 팀장은 "기존 규정이나 인식이 기술발전이나 산업트렌드를 잘 따라잡지 못해 공장 설립 승인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적지않다"며 "이런 때일수록 전문가들의 조언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