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ㆍ재정학>

부자 겨냥한 종부세­…위헌은 사필귀정

재산세제로도 세수확충ㆍ투기억제 가능

노무현 정부가 오로지 부동산투기를 잡는다는 명분만을 내세워 전후좌우를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여 만든 종합부동산세가 실시 3년 만에 헌법재판소의 호된 심판으로 좌초하게 됐다. 조세가 정부의 재정 충당 목적 외에 정책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해 주장돼왔고,또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활용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종부세처럼 오로지 부동산투기 억제라는 목적에만 매달려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더구나 주택을 거주목적으로 장기적으로 보유해온 서민들에게까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세금을 무차별적으로 중과한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제도였다.

지난 정부는 종부세의 기본 목적이 부동산 투기 억제와 부동산가격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내세웠지만,주택자산 보유 상위 2%에 대해 이들을 부유층으로 몰아 중과함으로써 세수확충도 꾀하고자 했음이 드러났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다,지금 부동산 가격이 많이 하락하고 오히려 부동산 가격의 지나친 하락을 염려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종부세의 개정을 극구 만류하는 것을 보면 종부세의 속셈은 부동산 투기 억제라는 명분으로 포장되었을 뿐 실제로는 세수 확충 목적이 더 컸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어쨌든 아무리 국회가 세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해도 국민이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법이 아니라면 그것은 잘못된 법이요 악법이란 게 이번 헌재 판결의 의미이다. 국민이 뽑은 국회는 악법을 만들고 국민은 다시 과거 국회의 실책을 헌재에 고발해 그 법을 심판받게 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헌재의 판결 내용을 보면 종부세법 자체는 합헌이지만 부부합산 과세조항을 위헌으로,그리고 거주목적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과세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현행 종부세는 목숨만 부지하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게 됐다. 왜냐하면 부부합산이 위헌이므로 1가구 2주택마저도 사실상 과세 대상에서 대부분 빠져나갈 뿐 아니라 1세대 1주택의 경우도 공동명의로 된 경우에는 역시 과세대상에서 대부분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인 다주택 소유자나 1주택 단독 명의자들만 과세 대상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1인 단독 명의의 1주택 소유자들 역시 과중한 종부세 과세대상이 지속된다면 부부공동명의로 전환해 종부세 부담을 피하고자 할 것이므로 결국 남는 것은 1인 다주택자들과 소수의 고가주택 소유자들일 뿐이다.

이런 상태로 종부세 제도를 끌고간다는 것은 세수확보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세무행정만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특히 1세대 1주택은 부부 공동재산으로 편의상 단독 명의로 된 경우가 일반적인데 공동명의의 사람들은 이미 낸 종부세마저도 환급받고 앞으로도 부담을 피하게 되는 반면 단독 명의의 1주택 소유자들만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면 이는 과세 보편성과 형평성에도 모두 어긋난다. 또한 이들로 하여금 조세부담 회피를 위해 공동명의를 하도록 유도하게 돼 조세가 재산 소유의 왜곡을 초래하고 등록세ㆍ취득세의 추가적인 부담만 야기한다. 따라서 종부세 제도를 더 이상 존치시킬 이유가 없으므로 차제에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종부세를 폐지하고 세수확충의 필요성과 담세자들의 부담능력을 고려해 누진과세 체제의 재산세 제도로 일원화하되 주거의 안정성이나 거주의 자유를 보장함과 아울러 투기억제에 도움을 주려면 1세대 1주택 장기보유자나 고령자들의 경우 감세 혜택을 주면 된다. 정부가 세수확보에 연연해 어정쩡하게 종부세 제도를 유지하려 한다면 쓸데없는 부작용만 야기하게 될 뿐이므로 조속히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