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권력 중독, 화폐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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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국가재량주의가 위기의 원인, 신자유주의 공격은 인지부조화
우리가 시장경제를 신뢰하는 것은 캄캄한 문제 상황에서 해법을 찾는 데 그나마 유연하고 정의로운 방법론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주먹의 힘과 목소리의 크기,다시 말해 국가가 제멋대로 정의(正義)를 규정하고 배분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국가가 자애로운 어버이처럼 모든 것을 정리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언제나 오류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언제나 대중의 선동을 먹고 살았다는 점을 굳이 부각시키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검증되어 온 터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경제위기라는 것도 사이비 민주주의 아래에서 국가 경제기구들이 대중에 영합하고 타락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클린턴 정부가 연방법까지 고쳐가면서 1990년 서민을 위한다는 모기지 대출을 확대 시행하였을 때 지금의 파탄은 예비되어왔던 것이다. 또 미국 중앙은행인 FRB가 대중에 영합해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대출 금리를 내리고 연방 금고를 열어 시장에 달러를 쏟아부었던 매 순간들 또한 더 큰 파국을 예비했던 것이다. 이런 사태를 우리는 시장의 실패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정부의 실패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린스펀에 대한 투자대중의 숭배가 시장의 실패인가 아니면 정부의 실패인가. 로마 몰락의 시발점이었던 황제 코모두스가 금화를 뿌려대면서 로마 병사들을 매수하였듯이 증권 투자자들에게 돈을 퍼부어댄 것을 결코 시장의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실패요 시장의 실패인 것처럼 선전전을 펴고 있지만 이는 인지부조화일 뿐더러 무모한 도전이다. 지금의 파국적 상황은 20세기형 대중 국가의 실패다. 각국 정부가 대중 영합적 복지정책이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장기적으로는 물론 단기적인 경기흐름조차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과 객기를 부려왔던 것 자체가 본질적인 오류였다. 중앙은행과 대중 민주주의의 타락이 시장을 압도할 때 어떤 상황이 초래되는지를 지금의 대붕괴가 잘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20세기 초 괴멸적 금융위기를 맞아 JP모건을 대체할 중앙은행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상대적이나마 독립성을 부여한 것은 그 의사결정이 정치적 프로세스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랐던 것이지만 중앙은행마저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데 이골이 났고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거품과 그것의 붕괴가 언제나 화폐적 현상이듯이 화폐의 타락은 또한 언제나 정치적 현상이었다. 실제로 정치는 언제나 화폐를 타락시켜 왔다. 19세기 후반 이후 국가들이 제멋대로 경제운영의 재량권을 가지고자 했을 때 번번이 고정환율부터 폐기하였듯이,국가가 나라 경제를 제멋대로 주무르고자 할 때 엄격한 준칙주의 화폐운영 원칙을 포기하고 재량권을 남용하면서 화폐가치를 희석시켜 왔던 것이다. 1978년 이후 20년 이상 적용되어왔던 '화폐공급에 대한 준칙(험프리-호킨스 법)'이 2000년 들어 폐기된 다음 그린스펀이 제멋대로 전 세계에 대한 달러 공급을 전년 대비 15%씩 늘려간 바로 그때 모든 것이 허구의 금덩어리로 변해갔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화폐관을 준칙주의라고 부른다면 최근 수년 동안 세계의 금융시장을 흔들었던 화폐의 타락과 거대 거품의 형성은 오로지 신자유주의로부터 일탈했기 때문에 나타난 병리현상이지 그 반대는 결코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프리드먼이 그랬던 것처럼 중앙은행의 재량권조차 제한하고자 했던 터다. 이것은 정부의 실패요 권력의 방종이다. 지금 GM이 미국 정부에 대해 "우리를 살려내라"고 생떼를 쓰는 것만 하더라도 만능 권력에 대한 만연한 도덕적 해이의 또다른 증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에 중독되어왔던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분명 사태는 악화되고 있다.
국가재량주의가 위기의 원인, 신자유주의 공격은 인지부조화
우리가 시장경제를 신뢰하는 것은 캄캄한 문제 상황에서 해법을 찾는 데 그나마 유연하고 정의로운 방법론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주먹의 힘과 목소리의 크기,다시 말해 국가가 제멋대로 정의(正義)를 규정하고 배분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국가가 자애로운 어버이처럼 모든 것을 정리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언제나 오류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언제나 대중의 선동을 먹고 살았다는 점을 굳이 부각시키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검증되어 온 터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경제위기라는 것도 사이비 민주주의 아래에서 국가 경제기구들이 대중에 영합하고 타락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클린턴 정부가 연방법까지 고쳐가면서 1990년 서민을 위한다는 모기지 대출을 확대 시행하였을 때 지금의 파탄은 예비되어왔던 것이다. 또 미국 중앙은행인 FRB가 대중에 영합해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대출 금리를 내리고 연방 금고를 열어 시장에 달러를 쏟아부었던 매 순간들 또한 더 큰 파국을 예비했던 것이다. 이런 사태를 우리는 시장의 실패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정부의 실패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린스펀에 대한 투자대중의 숭배가 시장의 실패인가 아니면 정부의 실패인가. 로마 몰락의 시발점이었던 황제 코모두스가 금화를 뿌려대면서 로마 병사들을 매수하였듯이 증권 투자자들에게 돈을 퍼부어댄 것을 결코 시장의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실패요 시장의 실패인 것처럼 선전전을 펴고 있지만 이는 인지부조화일 뿐더러 무모한 도전이다. 지금의 파국적 상황은 20세기형 대중 국가의 실패다. 각국 정부가 대중 영합적 복지정책이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장기적으로는 물론 단기적인 경기흐름조차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과 객기를 부려왔던 것 자체가 본질적인 오류였다. 중앙은행과 대중 민주주의의 타락이 시장을 압도할 때 어떤 상황이 초래되는지를 지금의 대붕괴가 잘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20세기 초 괴멸적 금융위기를 맞아 JP모건을 대체할 중앙은행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상대적이나마 독립성을 부여한 것은 그 의사결정이 정치적 프로세스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랐던 것이지만 중앙은행마저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데 이골이 났고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거품과 그것의 붕괴가 언제나 화폐적 현상이듯이 화폐의 타락은 또한 언제나 정치적 현상이었다. 실제로 정치는 언제나 화폐를 타락시켜 왔다. 19세기 후반 이후 국가들이 제멋대로 경제운영의 재량권을 가지고자 했을 때 번번이 고정환율부터 폐기하였듯이,국가가 나라 경제를 제멋대로 주무르고자 할 때 엄격한 준칙주의 화폐운영 원칙을 포기하고 재량권을 남용하면서 화폐가치를 희석시켜 왔던 것이다. 1978년 이후 20년 이상 적용되어왔던 '화폐공급에 대한 준칙(험프리-호킨스 법)'이 2000년 들어 폐기된 다음 그린스펀이 제멋대로 전 세계에 대한 달러 공급을 전년 대비 15%씩 늘려간 바로 그때 모든 것이 허구의 금덩어리로 변해갔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화폐관을 준칙주의라고 부른다면 최근 수년 동안 세계의 금융시장을 흔들었던 화폐의 타락과 거대 거품의 형성은 오로지 신자유주의로부터 일탈했기 때문에 나타난 병리현상이지 그 반대는 결코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프리드먼이 그랬던 것처럼 중앙은행의 재량권조차 제한하고자 했던 터다. 이것은 정부의 실패요 권력의 방종이다. 지금 GM이 미국 정부에 대해 "우리를 살려내라"고 생떼를 쓰는 것만 하더라도 만능 권력에 대한 만연한 도덕적 해이의 또다른 증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에 중독되어왔던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분명 사태는 악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