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수요 둔화…'두자릿 수 감소' 아무도 예상못해
내년 상반기까지 감소세 지속…하반기 이후 회복 기대



"아니,이럴 수가…."

수출 한국호에 적색 경보가 켜졌다. 그냥 빨간 불빛이 아니라 심연(深淵)의 끝에서나 느껴질 것 같은 검붉은 색깔이다. 미국에서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면서 수출이 둔화됐던 2001년보다 더 큰 시련이 우리에게 닥쳤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수출 전선에는 문제가 없었다. 지난 9월만 해도 27.7%에 달하던 수출증가율(전년 동월비)이 10월엔 8.5%로 떨어지더니 11월엔 -18.3%로 급락한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무도 두 자릿수의 감소를 예상하지 못했기에 언론들도 '쇼크'라는 표현을 썼다. 수출 관련 기사에 쇼크라는 말이 붙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내년 상반기까지 어려울 듯

수출 감소의 폭이 너무 크고 속도가 빠르다. 컴퓨터(-54.9%)와 가전(-50.6%)은 1년 전에 비해 수출이 절반 이상 줄었다. 반도체(-44.0%) 석유화학(-36.6%) 일반기계(-24.4%)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중국으로의 수출은 27.8%나 급감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경제권이 침체에 빠졌다고는 해도 그 폭은 깊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적어도 한 자릿수 감소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지식경제부 역시 "우리나라의 수출 대상국이 다변화돼 있는 데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침체가 내년 초에나 개도국으로 본격적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수출 전망을 낙관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까지 수출 감소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상품 수요가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금 압박을 받는 해외 수요처들이 적극적인 재고 관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매달 컴퓨터를 1만대씩 팔던 외국 유통업체의 판매량이 8000대로 줄어드는 경우 보유하고 있는 재고량도 1만대에서 8000대로 줄이게 된다. 일부 유통업체는 판매량 감소분보다 더 많이 재고 물량을 줄이고 있다. 해외 판매 감소와 재고 감축이 겹치면서 국내 수출업체의 판매가 타격을 받고 있다. 글로벌 신용경색이 더 심화되면 판매량이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해외 업체들의 재고량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한국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을 총괄하는 지경부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내년 상반기 수출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직접 조사했다. 그 결과는 심각했다. 주요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내년 상반기에는 올해보다 최대 30%까지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거의 모든 지역이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어 상반기 내내 수출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했다.



◆"수출을 살려야 한다"

수출 증대에 온 나라의 가용 자원이 총동원됐던 1960~70년대에는 수출확대회의라는 것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매달 이 회의를 주재했다. 당시 수출을 주도했던 종합상사 등 기업들은 할당받은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실적 달성은 곧 수출금융 지원으로 이어졌고,이는 다시 수출 증가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인 수출의존도는 한국이 36.7%로 미국(7.9%)일본(14.9%)영국(18.9%)보다 훨씬 높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36.3%)에 비해서도 약간 높다. 이런 수출이 꺾이면 그 충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 성장의 버팀목이던 수출은 이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만 것인가.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잠정적인 수치이긴 하지만 내년 수출은 올해보다 4% 늘어난 4558억달러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국제무역연구원 등도 3.2~8.9%의 성장을 예상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수출이 좋지 않겠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다.

이봉걸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내년 3,4월이 되면 중국 내 기업들의 재고가 소진되면서 다시 생산을 늘릴 가능성도 없진 않다"며 "그 이후에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유통업체들의 재고가 급속히 소진될수록 이를 다시 채워넣어야 하는 압력 또한 커질 것이기 때문에 좌절만 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생산원가를 더욱 낮추고 품질경쟁력을 높이면 조만간 다가올 수출 호황기에 다시 효자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