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준 <액센츄어 亞太총괄대표>

기업들 못지않은 어려운 상황, 자산매각ㆍ아웃소싱 적극 검토를

글로벌 동시 불황의 한파가 거세다. 여기에는 기업은 물론 국내 대학들도 예외 없이 노출돼 있다. 여론을 의식해 등록금을 동결한다지만 늘어나는 휴학생의 숫자에 재정 운영이 위태롭다. 기업이라면 이 같은 상황에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하지만 대학이라면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고민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단기처방이 아닌 중장기적인 경쟁력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비용을 아무리 절감해도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까지 낮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용절감으로 기업의 남는 자원을 재투자해 고객의 니즈를 추가로 충족시키기 위한 방안에 집중한다.

대학도 이 같은 기업의 대응을 배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학은 재정 압박을 받으면 학생의 인당교육비 지출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로 인해 학생 업무 지원이나 각종 서비스는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좀 더 고민해보면 학내의 비용 낭비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고,여기에서 남는 자원을 학생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적시에 찾아 제공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최근 국내 모 대학이 학생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대학의 취업 지원 서비스에 상당한 불만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투자했던 학적관리 시스템이나 원스톱 행정지원 서비스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럴 때는 같은 자원으로 더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이른바 '스마트 투자'를 생각해야 한다. 같은 금액의 투자라면 학생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취업지원 부문을 강화해 학생들이 느끼는 체감 서비스를 높여야 한다.

스마트 투자를 위해 대학이 기업에서 배워볼 만한 영역으로는 조직 재편성을 통한 운영 효율화,구매혁신을 통한 원가절감,재정 다각화를 통한 유동성 확보를 들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일부 대학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숙명여대는 2004년 전사적자원관리(ERP)를 도입하고 국내 대학 중 가장 먼저 구매 아웃소싱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월 3억~5억원의 학교물자를 구매대행 전문 기업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중앙대도 사무기기,인쇄,실험기자재,일부 시설자산에 대한 구매를 포함해 연 150억원 규모의 구매를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며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홍익대도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대학행정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그 하나는 부속기관에 대한 종합운영지원 센터의 도입이다. 20여 개의 부속기관 중 1~2명의 직원이 중심이 돼 운영됐던 소규모 부속기관들을 종합운영지원의 개념으로 통합해 관리하는 것이다. 시설관리나 보안 등의 단순한 업무가 필요한 곳은 통합 관리하기 때문에 당장 인력운영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탄탄한 재정은 대학발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만 국내대학은 등록금과 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율이 높아 재정 구조가 지극히 단순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기부금과 연구수입 등 재정 수입원의 다각화는 따라서 국내 대학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업은 위기 때 유동성 확보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가동한다. 국내 대학들이 대부분 재단의 중앙집중형 경영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은 위기상황에 대해 비교적 일사불란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대학의 학생과 기업의 고객을 같은 개념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교를 운영하는 데에는 돈이 필요하고,위기 상황에서의 긴축운영은 어느 조직이든 필요하다. 국내 대학들이 대부분 재무적인 투자에 둔감하고 중앙집중형의 관리 방식을 보유한 것은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위기를 헤쳐나가는 대학운영의 전략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