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요? 지독한 멜로예요. 남녀가 목숨을 걸고 감정의 극한으로 치달으니까요. 처음에는 애정 없는 육체관계가 회를 거듭할수록 사랑과 탐닉으로 진전됩니다. 인간의 본성도 그런 게 아닐까요?"

'비열한 거리' 이후 2년 만에 유하 감독의 사극 멜로 '쌍화점'(30일 개봉)에 출연한 조인성(27)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쌍화점'이라는 제목은 여인들의 세속적인 밀애를 담은 고려 가요에서 따온 것.공민왕(주진모)과 왕비(송지효),공민왕의 호위무사 간 삼각관계를 75억원을 들여 촬영한 대작이다.

'꽃미남 배우' 조인성은 호위무사 홍림 역으로 왕과 왕비 사이를 오가며 노골적인 정사신을 펼쳐 시사회 직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몸으로 지독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격정적인 정사신이 필요했어요. 왕과의 동성애신에서는 딥키스를 했고,왕비와의 정사신에선 난생 처음 알몸 연기에 도전했습니다. 사실 촬영 중에는 부끄럽고 민망했어요. 하지만 정사신은 영화적 진실성을 드러내는 장치였죠.결과적으로 초반부 동성애신이 격렬했던 만큼 종반부까지 이야기를 힘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알몸 베드신은 종반의 파국을 더욱 극적이고 슬프게 와닿게 했고요. "

전라(全裸)로 만난 호위무사와 왕비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나눈다. 이들의 관계가 권력에 의해 파국으로 치달을 때 안타까움은 배가된다.

"정사신이나 치정 관계보다는 세 주인공의 감정 변화,특히 육체가 정신을 리드하는 주제가 핵심이죠.이는 리안 감독의 '색,계'와도 일맥 상통합니다. 그러나 '색,계'에서는 이성애를 기반으로 적과의 동침에서 빚어지는 상황이었지만 여기에서는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옮겨가고,이성애를 접한 뒤 동성애는 자신의 본질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홍림의 성애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죠."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 유하 감독은 세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왕이나 왕비와의 정사신에서 홍림의 몸이 반응하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잡아냈다.

"동성애 연기는 어려웠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일상성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남자와 남자 간의 성애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간의 사랑으로 생각했습니다. 감독은 왕을 왕비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주문했지요. "

조인성은 주진모 송지효와의 호흡이 앙상블을 이루지 못했다면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홍림은 왕과 왕비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세 배역은 비슷한 비중으로 삼투압을 이루며 환희와 고통,탐닉과 질투 등 사랑의 여러 행로를 거친다.

2004년 방송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모성을 자극하는 인물로 스타덤에 올랐던 조인성은 2년 후 '비열한 거리'에서 마초적인 조폭 중간보스로 변신한 뒤 이번에 다시 여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남성 역으로 돌아왔다.

이에 대해 조인성은 "'발리…'에서는 제 멋대로 행동하는 인물이라 감정 표출도 쉬웠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며 "호위무사란 캐릭터는 지극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어 복잡한 사랑의 감정을 은근한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다"고 말했다. '쌍화점'은 군 입대 전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될 듯 싶다. 그는 공군 군악대 시험을 거쳐 내년 초 입대할 계획이다.

글=유재혁 기자/사진=임대철 인턴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