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에 한번'쯤이라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이어지면서 오너 경영으로 돌파구를 찾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경영 환경이 불투명해지자 책임감 있는 오너를 사령탑으로 내세워 불황 탈출을 꾀하는 것이다. 자동차 강국 일본에서는 스즈키에 이어 도요타가 회사를 살릴 구원투수로 창업가문 출신을 내세웠다. 불황에 강한 오너 중심의 '가업형 기업(Family Business)'에 대한 관심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높아지는 추세다.

◆일본 자동차산업,오너들의 귀환

스즈키에 이어 도요타자동차도 창업가문 출신이 경영일선 전면에 나설 움직임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창업자 4세인 도요다 아키오 부사장(52)을 내년 4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전격 승진시키기로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와타나베 가쓰아키 현 사장(66)은 부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도요타는 판매 급감과 엔고로 올해 사상 첫 1조5000억엔(약 2조원)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자 경영혁신 차원에서 도요다 아키오 부사장의 사장 기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에서 창업가문 출신이 사장을 맡은 것은 1995년 8월 퇴임한 도요다 다쓰로(79) 이후 14년 만이다. 현재 도요다 가문이 갖고 있는 도요타자동차 지분은 2%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도요타자동차에서 도요다 가문은 여전히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창업가문 출신의 경영인에 대한 회사 안팎의 거부감은 없는 상태다.

아키오 부사장은 도요다 사키치 도요타그룹 창업주의 증손자이자,도요다 쇼이치로 현 명예회장(82)의 장남이다. 게이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밥슨칼리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그는 뉴욕의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부친의 권유로 도요타에 입사했다. 2000년 이사에 취임한 뒤 2002년 상무,2003년 전무,2005년 부사장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경영승계를 준비해왔다. 현재 국내 영업과 해외 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앞서 비상경영을 선언한 경차업체인 스즈키에서도 창업가문 출신인 스즈키 오사무 회장(78)이 최근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스즈키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쓰다 히로히 사장(63)의 후임을 임명하지 않고,자신이 사장직까지 겸직키로 했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1978년 사장에 취임해 22년간 경영을 책임지다가 2000년 회장으로 물러난 스즈키 회장이 사장으로 경영일선에 재등판한 것이다. 스즈키 회장은 "1~2년 안에 경기가 좋아질 상황은 아니다"며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는 싫어도 사장직을 내가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받는 가업형 기업 모델

일반인의 상식과 달리 창업가문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의 실적이 좋다는 연구 결과는 적지 않다. 일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가업형 기업'이 전문 경영인 회사보다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고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업형 경영의 장점으론 △풍부한 인맥 △장기 관점 경영 △강한 위기 대처능력 △브랜드 및 평판 중시 △알뜰한 지출 등을 꼽을 수 있다. 주가 관리 등 눈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브랜드력을 지키고 종업원을 중시하는 혈족 경영에서 배울점이 많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가업을 중시하는 일본에선 가업형 기업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이익잉여금이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잉여금 비율에서 상위 20사(도쿄증시 1부,2006년 기준) 가운데 17개가 가업형이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탁월한 실적을 내는 가업형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최대 건설기계업체인 캐터필러는 '대가족주의 경영'이란 말을 듣는 회사다. 이 회사는 1933년 이후 올 3분기까지 300분기 연속 배당을 하는 기록도 세웠다.

프랑스 자동차업체인 푸조시트로앵그룹(PSA)도 전통적인 가족기업으로,오너인 푸조가(家)는 탁월한 자산배분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곡물 메이저인 카길,독일의 세계적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스웨덴의 유명 가구업체인 이케아 등도 가족기업에 속한다.

프랑스 비즈니스스쿨 인시아드의 란델 칼록 교수는 "가업형 회사의 실적이 좋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업계에서 패밀리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에 있는 중유럽국제공상학원 리시우옌 교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75개사가 가족경영을 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도쿄=차병석 특파원/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