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비상경영 거부'에 조합원들 성토 잇따라

"노조 집행부는 GM 등 미국 빅3의 전철을 밟겠다는 것인가. "(현대차 울산공장 조합원) "지난 21년간 현대차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협력업체가 얼마나 많은 수난을 당했는지 모른다. 노조가 위기의식이 없는 것 같다. "(울산 Y기계 이모 이사)

금속노조 산하 현대자동차 지부가 23일 소식지를 통해 사측의 비상경영 체제 전환을 정면 거부하자 이를 성토하는 조합원 및 협력업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행부가 무사안일" 현장 반발 확산

울산공장 등 현대차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노조 집행부의 '비상경영체제 전환 거부'에 대해 전체 조합원의 의사를 묻지 않은 일방통행식 결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조합원은 금속노조 게시판을 통해 "현대차 노조가 겉으로는 노동자 계급 단결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자신만의 배불리기에 혈안이 됐다. 이제는 진정으로 고통분담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일부 현장 조직들이 회사가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절대 그런 게 아닌 것 같다"며 "위기는 잘 극복하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만큼 노조도 마음을 열고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산 위기에 몰린 협력업체들도 노조 집행부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경주의 한 부품업체 대표는 "내년 자동차 판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환배치니 혼류생산이니 하는 게 별 의미가 없게 됐다"며 "지금은 노사가 위기 극복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라고 강조했다.



◆자발적인 비용절감 운동도

노조 집행부가 정치 투쟁에만 골몰하고 있는 사이 현장에서 스스로 원가절감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울산 5공장의 생산직 반장과 계장급 노조원 100여 명은 이날 '우리가 먼저 앞장서겠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내고 "회사의 위기 극복에 우리가 먼저 앞장서겠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실천 방안으로 △장갑 및 이면지 재활용을 통한 원가절감 생활화 △안전화 조끼 작업복 등의 자발적 반납과 에너지 절약 △공(空)운전 방지 △공정 품질 향상으로 불량률 줄이기 등을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울산 5공장의 한 생산반장은 "회사는 꺼져가는 생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정작 노조 지도부는 너무 무사안일한 것 같다"며 "노조 동의없이 대자보를 붙이는 행위가 문제될 수 있지만 참혹한 현실을 더이상 볼 수 없어 자발적으로 위기 대응에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울산 5공장의 비용절감 운동은 다른 공장에도 확산되고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노조가 발상 전환해야 위기극복

노조의 발상 전환 없이는 글로벌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현대차 관계자는 "외국에선 전환배치 등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노조가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며 "사측의 비상경영 조치들도 노조 협조 없이는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답답할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현대차의 조립생산성(자동차를 1대 만드는 데 소요된 총투입시간)은 2006년 기준으로 31.1시간이다. 도요타(22.1시간) 혼다(21.1시간) 등 일본 업체는 물론 GM(22.1시간) 포드(23.2시간)보다도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류기천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강성 노조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시장 평가가 냉혹하다는 점을 노조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하인식/조재길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