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등반대' 지리산 종주 (下)] 희망의 불덩어리가 치솟았다…다시 쓰러져도 일어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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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희끄스럼한 산자락,그 너머로 캄캄한 숲이 절망처럼 앙상하고 메마른 바람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외투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눌러써도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은 칼처럼 목덜미를 후벼팠다. 등반대는 꾸역꾸역 정상을 향했다. 다리가 천근처럼 무거웠고 시야는 진눈깨비로 흐려지기 일쑤였다.
12월18일 새벽 5시40분.등반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삶의 의미를,그 무게와 색깔을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새벽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캄캄한 산야를 헤매고 있는가….
누군가 눈시울을 적셨다. 꽁꽁 싸맨 얼굴 위로 허연 김이 서리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갈 뿐이었다. 우리는 이 산행이 갖고있는 의미를 비로소 알게됐다. 우리 모두가 갖고있던 고단함을 대자연 앞에 부려놓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 우리가 가졌던 사랑과 슬픔,즐거움과 분노,일상에 대한 숱한 회의와 자학에 가까운 울분까지…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큰 산이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그런 포용력 때문이라고 모두는 믿고 있었다. 날 괴롭힐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무엇이 날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천왕봉이 가까워오면서 모두는 알게 됐다. 30km가 넘는 종주의 막바지에,보잘 것없는 체력도 한계에 다다랐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못마땅했던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하는 사실을….모진 세파와 비루한 일상 속을 헤치며 살아왔던 실패와 좌절을 스스로 보듬어안아야 했다. 진실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타인을 사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에 펼쳐진 시간의 강을 건너갈 수도 없었다.
아마도 박정일 군(26)은 아버지를 용서했을 것이다. 자신의 청춘을 혼란과 방황으로 얼룩지게 했던 아버지에게 이해와 화해를 구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삶을 꾸려갈 자신을 위해서,자신의 꿈을 위해서였다. 레프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랑은 우리 영혼 속에 살며 타인 또한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박정일의 아버지 또한 사랑받지 못한 외로운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 박정일이 아버지를 용서하는 길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짙은 자기연민에서 시작될 것이다.
하늘은 캄캄했지만 별빛으로 은은했다. 구름은 이미 발 아래에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올 여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왕봉이 한걸음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젠 바람이었다. 천왕봉의 돌개바람은 등반대의 갖가지 상념들을 일거에 날려버릴 정도로 거세고 강력했다. 바람이 부는대로 우리들의 몸은 한쪽 구석으로 휙휙 날렸다.
공포가 밀려왔다. 이대로 날려버리면 낭떠러지 아래 무수한 돌과 바위들에 의해 그대로 찢겨져버릴게 분명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에 손을 잡고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스틱도 아이젠 스패츠도 소용없는 맨 바위….하늘과 날씨가 허락해야 만져볼 수 있다는 천황봉 바위였다.
이제 봉우리에 올라서면 모두가 고대하던 태양이 솟아오를 터였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그 유명한 천왕봉의 일출이었다.
종주 며칠 전부터 감기에 시달리며 갖은 고생을 다했던 조성구 씨는 정상에 오르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바람은 여전히 그의 야윈 몸을 거세게 휘감고 돌았지만 그는 묵묵하게 앉아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중국집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돼 가출을 했던 일,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게 없어 죽을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던 일….그는 천왕봉 등정으로 과거의 아픔을 다 씻을 수 있게된 것일까.
일행들이 모두 천황봉에 올라 기념촬영을 할 때에야 그의 얼굴에도 웃음과 홍조가 어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표정속엔 자부심과 성취감이 충만했다. 콧물을 닦고 더러는 눈가를 훔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순간만은 세상 모두를 가진듯한 뿌듯함이 등반대를 찾아왔다. 사실 더 오를 곳이 없었다. 모든 풍경이 발 아래 있었다. 저 멀리 남해바다까지….
태양이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천왕봉의 일출은 뜨거웠다. 태양은 산등성이 위로 불덩어리를 안고 천천히 올라왔다. 눈이 부시고 가슴이 벅찼다. 목회자 출신인 문용산 씨는 발그스레한 얼굴에 한가득 태양을 담았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그는 부인,딸과 함께 내여집에 입소했다. 술도 마시지 않고 노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경위로 경제적 곤경에 처했고 다시 자립기반을 닦을 때까지 내여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등반 내내 가장 과묵했던 사람,좀처럼 자신의 과거사를 얘기하지 않던 인물었지만 천왕봉의 붉은 태양앞에서는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종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일행들은 정말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며 마음껏 기념촬영들을 했다. 태양이 산야를 지배하자 그토록 모질게 불던 바람도 잦아들었다. 굽이굽이 펼쳐진 산자락도 모두 구름을 걷어내고 그 화려한 음영을 뽐냈다.
등반대의 힘찬 함성이 몇차례 울렸다.
'야~~~~'
그간의 울분과 외로움,서럽기만 했던 과거를 떨쳐내는 것이었다. 눈물은 메말랐지만 천왕봉 정상은 새로운 희망의 기운으로 넘실거렸다. 희열과 고통,기쁨과 회한이 폭포수처럼 모두의 가슴 속에 쏟아져내렸다. 일출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뭔가 물컹하고 따스한 기운들이 우리를 감싸왔다. 희망이고 긍정이고 미래에 대한 의지였다.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으리라.다시 쓰러지더라도 반드시 일어서리라.세상에 날 일으켜세울 이는 유일하게 나 자신 밖에 없다고….
지리산=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희망 등반대 명단>
△김철희 인천 '내일을 여는 집' 목사
△고길연ㆍ이칠성 ㆍ문용산 ㆍ조성구ㆍ박정일 (재활인)
△김상철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장(등반대장)
△조일훈 산업부 차장
△강은구 영상정보부 차장
△유창재 정치부 기자
△김현예 산업부 기자
△박신영 문화부 기자
12월18일 새벽 5시40분.등반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삶의 의미를,그 무게와 색깔을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새벽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캄캄한 산야를 헤매고 있는가….
과거 우리가 가졌던 사랑과 슬픔,즐거움과 분노,일상에 대한 숱한 회의와 자학에 가까운 울분까지…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큰 산이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그런 포용력 때문이라고 모두는 믿고 있었다. 날 괴롭힐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무엇이 날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천왕봉이 가까워오면서 모두는 알게 됐다. 30km가 넘는 종주의 막바지에,보잘 것없는 체력도 한계에 다다랐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못마땅했던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하는 사실을….모진 세파와 비루한 일상 속을 헤치며 살아왔던 실패와 좌절을 스스로 보듬어안아야 했다. 진실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타인을 사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에 펼쳐진 시간의 강을 건너갈 수도 없었다.
하늘은 캄캄했지만 별빛으로 은은했다. 구름은 이미 발 아래에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올 여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왕봉이 한걸음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젠 바람이었다. 천왕봉의 돌개바람은 등반대의 갖가지 상념들을 일거에 날려버릴 정도로 거세고 강력했다. 바람이 부는대로 우리들의 몸은 한쪽 구석으로 휙휙 날렸다.
공포가 밀려왔다. 이대로 날려버리면 낭떠러지 아래 무수한 돌과 바위들에 의해 그대로 찢겨져버릴게 분명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에 손을 잡고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스틱도 아이젠 스패츠도 소용없는 맨 바위….하늘과 날씨가 허락해야 만져볼 수 있다는 천황봉 바위였다.
종주 며칠 전부터 감기에 시달리며 갖은 고생을 다했던 조성구 씨는 정상에 오르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바람은 여전히 그의 야윈 몸을 거세게 휘감고 돌았지만 그는 묵묵하게 앉아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중국집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돼 가출을 했던 일,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게 없어 죽을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던 일….그는 천왕봉 등정으로 과거의 아픔을 다 씻을 수 있게된 것일까.
일행들이 모두 천황봉에 올라 기념촬영을 할 때에야 그의 얼굴에도 웃음과 홍조가 어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표정속엔 자부심과 성취감이 충만했다. 콧물을 닦고 더러는 눈가를 훔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순간만은 세상 모두를 가진듯한 뿌듯함이 등반대를 찾아왔다. 사실 더 오를 곳이 없었다. 모든 풍경이 발 아래 있었다. 저 멀리 남해바다까지….
등반 내내 가장 과묵했던 사람,좀처럼 자신의 과거사를 얘기하지 않던 인물었지만 천왕봉의 붉은 태양앞에서는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종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일행들은 정말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며 마음껏 기념촬영들을 했다. 태양이 산야를 지배하자 그토록 모질게 불던 바람도 잦아들었다. 굽이굽이 펼쳐진 산자락도 모두 구름을 걷어내고 그 화려한 음영을 뽐냈다.
등반대의 힘찬 함성이 몇차례 울렸다.
'야~~~~'
그간의 울분과 외로움,서럽기만 했던 과거를 떨쳐내는 것이었다. 눈물은 메말랐지만 천왕봉 정상은 새로운 희망의 기운으로 넘실거렸다. 희열과 고통,기쁨과 회한이 폭포수처럼 모두의 가슴 속에 쏟아져내렸다. 일출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뭔가 물컹하고 따스한 기운들이 우리를 감싸왔다. 희망이고 긍정이고 미래에 대한 의지였다.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으리라.다시 쓰러지더라도 반드시 일어서리라.세상에 날 일으켜세울 이는 유일하게 나 자신 밖에 없다고….
지리산=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희망 등반대 명단>
△김철희 인천 '내일을 여는 집' 목사
△고길연ㆍ이칠성 ㆍ문용산 ㆍ조성구ㆍ박정일 (재활인)
△김상철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장(등반대장)
△조일훈 산업부 차장
△강은구 영상정보부 차장
△유창재 정치부 기자
△김현예 산업부 기자
△박신영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