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예상 인플레율 급락 … 유가 5개월새 76% 폭락
소비 감소 → 물가 하락 → 경기 침체 악순환 우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3대 경제대국이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경기는 침체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글로벌 동반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미국발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파급돼 수요가 급감하면서 향후 10년간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보여주는 예상 인플레이션율이 최근 각국에서 크게 하락했다. 미국에서는 10년간 예상 인플레이션율이 올 여름까지는 2~3% 정도였지만 지난 23일엔 0.1%로 거의 제로(0)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국과 독일도 2~4%에서 1%대 전반까지 하락했다. 일본에서는 9월 마이너스로 전환된 후 현재 -2.2%를 기록하고 있다.

예상 인플레이션율은 장래의 물가 수준에 대한 시장 전망치로 이 지표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JP모건은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임금 하락이 예상돼 미국이 2010년 중 디플레 상태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유가 급락도 디플레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7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는 5개월 만에 76% 급락했다. 내년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지난 24일 3.63달러(9.3%) 떨어진 배럴당 35.3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실제로 각국의 최근 경제 지표는 디플레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의 경우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달에 비해 1.7% 하락했다. 이는 1947년 물가 지표를 작성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물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치솟는 가운데 소비자들이 지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11월 6.7%로 뛴 미 실업률은 내년 초 8%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다. 11월 중 가계 소득도 감소했다. 반면 성장률은 올 3분기 -0.5%에 이어 4분기엔 -6%대로 추락할 전망이다. 내년 성장률도 -0.9%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11월 생산자 물가가 전달에 비해 1.9% 하락했다.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60년 1월 이래 최대 하락폭이다. 원유가격 하락과 세계적인 경기 악화에 따른 수요 급감,소비 부진이 생산자물가 하락을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올 성장률은 정부가 0.5%,민간 연구기관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은 정부가 0%,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0.5%로 보고 있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이 -2.2%로 7년 만에 뒷걸음질 친 중국도 디플레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선인완궈증권은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CPI)을 -0.2%로 예상했다. 모건스탠리의 왕칭 중국 담당 수석 연구원도 "내년 상반기 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더욱 둔화된다면 디플레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1.9%에 달했던 중국의 성장률이 내년엔 5%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도 물가 상승세가 크게 둔화되며 디플레 우려가 밀려들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5개국)의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2.1%로 전달보다 1.1%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1991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도쿄=차병석/뉴욕=이익원/베이징=조주현 특파원 chabs@hankyung.com

[ 용어풀이 ]

◆예상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국채 금리 등을 이용해 산출하는 장래의 물가 수준에 대한 예측치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반영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실질 이자율+기대 인플레이션율)에서 물가 수준이 반영된 물가연동 국채 금리(실질 이자율)를 빼 계산한다. 이것이 플러스(+)이면 그만큼 물가가 오르고 마이너스(-)이면 디플레이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