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영국 보다폰을 제친다?'

보다폰과 SK텔레콤의 현재 사업 규모만 놓고 비교해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보다폰은 세계 25개국에서 2억60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연간 매출도 70조원이 넘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업체다.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달성할 만큼 사업 무대도 전 세계를 아우른다. 반면 SK텔레콤은 국내 시장에서 가입자 2300만명,연 매출 11조원을 올리는 데 그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은 5%에도 못 미친다.

이런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은 2015년께 보다폰 같은 글로벌 사업자로 변신하겠다는 내부 목표를 정했다. 포화된 내수 시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보다폰처럼 해외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금력이나 해외 네트워크 측면에서 보다폰에 비해 열세지만 통신강국 한국에서 쌓은 유.무선 통신 컨버전스 기술을 앞세운다면 미래 시장에서 한번 승부를 해볼 만하다는 게 SK텔레콤의 판단이다.

글로벌 통신 시장 개척 선구자 보다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보다폰은 SK텔레콤처럼 자국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은 이동통신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통신 경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시장 문호를 개방하는 쪽으로 정책을 변화시키는 트렌드를 먼저 읽고 이에 대비한 게 글로벌 톱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요인이다. 모두 안방시장에 안주할 때 먼저 해외로 눈을 돌려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보다폰은 1990년대 초반 스웨덴 노르딕텔 인수를 시작으로 99년에는 통신시장의 본토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에어티치를 인수했다. 독일,스페인,터키 등 주요 유럽국가는 물론 인도,이집트,케냐 등 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경영권을 인수해 진출한 나라만 25개국,일부 지분을 인수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까지 포함하면 세계 39개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보다폰도 2006년 위기를 맞았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던 일부 지역에서 주가 폭락 등의 내상을 입으며 적자를 기록한 것.일본 시장에선 지분을 다시 되팔며 철수하기도 했다. 단순한 인수.합병(M&A) 중심의 성장전략이 한계를 드러낸 게 실적 부진의 이유로 꼽혔다. 이에 따라 보다폰은 시장이 포화된 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는 데이터 서비스 매출 확대 등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 M&A 역량을 집중하는 쪽으로 전략을 변경하고 있다.



SK텔,'2015년 보다폰을 넘어라'


해외 매출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SK텔레콤은 보다폰에 비해 글로벌 사업 수준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해외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고 2006년 진출했던 미국에서는 가입자 확대에 실패해 철수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런 격차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이 '2015년 타도 보다폰' 목표를 세운 건 기술력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앞선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폰이 1990년대 규제 변화를 미리 읽어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면 SK텔레콤은 유.무선 컨버전스 기술 변화를 앞서 읽어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보다폰이 성장에 한계를 드러낸 요인 중 하나는 차세대 수익원인 데이터 서비스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동통신 시장이 음성통화에서 데이터 서비스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반면 SK텔레콤은 전체 매출에서 데이터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을 이미 세계 평균보다 2배 높은 2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SK텔레콤이 중국 시장에서 TR뮤직,매직그리드 등 음악,게임 업체들을 인수하며 컨버전스 사업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강점을 살리기 위한 전략이다.

다양한 이동통신 기술을 함께 보유한 것도 SK텔레콤의 강점이다. SK텔레콤은 국내 시장에서 미국식(CDMA),유럽식(WCDMA) 서비스를 모두 상용화했고 무선 초고속인터넷인 와이브로(모바일 와이맥스) 서비스 경험도 갖췄다. 게다가 중국 정부와 협력하며 중국 3세대 이동통신 표준(TD-SCDMA) 개발에도 동참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확보한 게 최고의 자산이다.

해외 진출의 첨병 u-시티

정보기술(IT)과 건설 등을 결합한 유비쿼터스 도시(u-city)도 SK텔레콤이 글로벌 사업 확대의 첨병으로 육성하는 분야다. u-시티는 도시 전체를 IT 기술로 제어하는 첨단 서비스로 SK텔레콤의 기술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사업이다. SK텔레콤은 국내뿐만 아니라 SK그룹의 글로벌 u-시티 전략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다.

SK텔레콤의 통신네트워크 기술,SK C&C의 시스템 통합 기술,SK네트웍스의 통신망 설계 역량,SK건설의 기반시설물 구축 노하우 등 SK 계열사들의 역량을 한데 모아 해외로 나갈 수 있어 그룹에 미칠 시너지 효과도 크다.

지난 5월에는 중국 베이징시와 문화산업단지(베이징 컬처시티)를 조성하는 제휴를 체결했고 지난해 3월에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투자청과 u-시티 공동 건설을 위해 손을 잡았다. 중국 선전,캄보디아 등 u-시티 건설을 협의 중인 곳도 다수다.

해외사업에 사활을 걸기 위해 조직과 인재 육성 체계도 바꿨다. 2009년을 대비해 실시한 조직개편에서 사내독립기업(CIC)별로 글로벌 사업 추진체계를 별도로 도입하는 등 해외 시장 개척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 2006년부터 해외사업에 필요한 인력을 전문 육성하는 글로벌비즈 상비군 제도까지 도입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는 길밖에 없다"며 "컨버전스 기술에서는 글로벌 사업자에 비해 2~3년 앞서고 있어 해외사업에도 여러 가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