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섭 <서울대 교수ㆍ경영학>

뒷돈등 부정있으면 성과 기대못해

예산집행 공개…투명성 높여야

작년부터 세계 경제를 휩쓸고 있는 최악의 침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두고 모든 나라가 정책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인데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것과 소비침체로 둔화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오바마는 부실해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것을 작년 2월에 이미 공약한 바 있다. 오래된 도로와 교량 같은 주요 시설물들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최소 1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올해 예산 284조원 중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26.7%나 늘어난 24조7000억원을 배정했다. 도로와 철도망을 재정비해 물류비용을 줄이고,10억원당 18.7명에 이르는 취업유발효과와 생산유발효과가 있는 건설업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재 상황에서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투자는 전후방 산업연관성이 높아 내수 진작 효과도 크다. 통화정책과 달리 자본투자는 대규모 재정지출을 유발해 즉각적이고 연쇄적으로 수요를 창출한다. 생활환경 개선과 공공사업 지출이 확대되면 기업의 일감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정책의 효과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곤 했다. 1933년에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사상 최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단행했지만 1937년 다시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졌다. 일본의 사례도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자민당은 1992년부터 천문학적인 자본투자를 했으나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100조엔에 달하는 사회간접자본 투자정책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은 무려 10년 이상 계속됐다. 미국과 일본의 실패는 공통적인 이유를 갖고 있었다. 두 나라 모두 건설사업에 도사리고 있는 '부패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은 국가 경제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데 몰두했다. 자본 예산을 출신지역구를 관리하기 위해 남용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기존시설의 보수보다는 가시적인 신규 대형건설 사업에 주력했다. 사업을 집행하는 관료들도 문제였다. 사업자 선정에서부터 완공 감리과정까지 기업들에 뒷돈을 요구했다. 그 결과 사회간접자본 투자정책은 정부의 재정건전성만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오바마의 투자정책에 대해 기대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허무맹랑한 사업에 예산이 배정되고 집행 과정에서 부패가 되살아날 조짐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비판이 거세지자 차기 행정부 관계자들은 선심성 사업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사업 진행 상황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예산 집행과정에서 사업자 선정,그리고 건설 과정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을 이용해 고질적인 문제를 척결하겠다는 의도다.

이는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지난 회기에 국회의원들은 금년도 예산안 심의를 소홀히 했다. 실속 없는 국정 감사는 가뜩이나 짧은 예산 심의기간을 더 짧게 만들었다. 예산심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 부정과 부패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올 들어서도 국회는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개점 휴업 상태다. 정치인들이 직무유기를 한다면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집행 과정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사업의 투명성을 높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 무안국제공항이나 양양공항같이 경제타당성이 부실한 투자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또 환경을 해치는 과시형 선심성 투자도 그쳐야 한다. 일자리를 늘리고 국가경쟁력을 강화시켜주는 양약(良藥)이 재정난과 경제난을 악화시키는 독약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