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디지털 음악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 애플이 디지털 음원의 저작권 보호장치를 단계적으로 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저작권 보호를 위해 도입된 DRM(디지털 저작권 관리장치) 정책이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사라지는 등 디지털 음원 시장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에서 기조연설을 한 필 실러 마케팅담당 부사장은 아이튠스에 있는 모든 디지털 음악을 DRM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실러 부사장은 "유니버설 소니 등 주요 대형 음반사와 협의를 거쳐 이날부터 800만곡을 DRM 없이 제공하고,3월 말까지 나머지 200만곡도 DRM을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아마존 등 경쟁업체들이 최근 DRM이 없는 곡들을 판매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아이튠스는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을 포함,온라인으로 음악을 다운로드 받으려는 네티즌들이 즐겨 찾는 미국 최대 온라인 음원 판매 서비스다. 시장조사업체인 NPD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아이튠스의 시장점유율은 75%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인 아마존의 시장점유율이 10% 미만인 상황에서 애플의 이런 정책 변화는 온라인 소매판매 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음반 업계는 그동안 저작권 보호를 위해 DRM 사용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2007년 초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디지털 음악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DRM을 없애야 한다"며 음반 업계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한 이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마침내 세계 4대 음반 업체인 EMI그룹과 유니버설 뮤직그룹,소니 BMG,워너뮤직그룹 모두의 동참을 이끌어낸 것이다. 저작권 보호를 포기하더라도 보다 자유롭게 소비자들이 음원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음반 업계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DRM이 시장 개척 및 수익 창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다른 콘텐츠 산업에도 영향을 주게 될지 주목된다.

DRM을 해제한다는 것은 소비자가 한번만 돈을 지불하고 음악을 다운로드 받으면,그 음악을 마음대로 CD로 구울 수 있고 다른 기기로 전송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이튠스에서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 청취해왔던 사용자들도 1곡당 30센트의 추가 비용만 지불하면 기존 음악을 DRM 해제 방식으로 변경할 수 있다. 실러는 또한 3G 아이폰 사용자들이 휴대폰 무선 인터넷망을 통해서도 음악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방식에선 이용자들이 아이튠스에서 음악을 내려받아 애플이 만든 아이팟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 DRM이 폐지되면서 아이튠스에서 내려받은 음악을 삼성전자 등 타사의 MP3 플레이어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애플의 DRM 폐지로 음원 가격에 당장 변동이 생겼다. 애플은 앞으로 음반업체들의 결정에 따라 곡당 69센트,99센트,1.29달러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책을 변경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모든 음원의 가격이 99센트로 일괄 책정됐다. 가격은 음질 등에 따라 차별 책정된다. 이는 DRM 해제에 따른 손실을 우려한 음반 업계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음원 가격 차별화는 오는 4월부터 시작다고 애플 측은 밝혔다.

애플의 음원 가격 차별화는 디지털 음원 시장의 경쟁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음원가격을 차별화하면서도 상당수 음원 가격을 곡당 69센트로 책정할 것이라고 밝혀 가격 경쟁에도 불을 지폈다. 경쟁사인 아마존은 MP3 음원을 현재 곡당 89센트와 99센트로 구별해 판매하고 있다.

애플의 정책 변화는 최근 디지털 음악 시장의 성장 둔화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닐슨의 집계에 따르면 인터넷 유료 다운로드 시장은 2007년에 전년 대비 45%의 성장세를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27% 성장으로 성장 폭이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세가 둔화되긴 했어도 디지털 음악 시장의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주피터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 음악 시장에서 디지털 음원의 매출액은 16억달러에 달했다. 디지털 음원의 매출액은 2012년까지 전체 미국 국내 음악 시장의 3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음악 시장에서는 CD가 96억달러의 매출액을 올리며 전체 시장에서 여전히 가장 높은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DRM이란='디지털 저작권 관리(Digital Rights Management)'의 약자.인터넷 대중화로 디지털 콘텐츠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불법복제 등으로 인한 문제점이 크게 대두됐다. DRM은 암호가 내장돼 파일 자체를 복제해도 인증받지 못한 사람은 쓸 수 없도록 사용에 제한을 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