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 색 바랜 혁명구호가 되어버린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이 겨울,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벽보들로 덕지덕지 누더기가 되어있는 서울대 학과 게시판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경제학이 어떻게 개밥그릇처럼 나뒹굴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터다. 경제위기에 편승해 방울을 흔들며 종말이 다가왔다고 호들갑을 좀 떨었을 뿐인 인터넷 굿판의 작은 무당을 잡아 족친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인터넷이 초등생까지 촛불시위로 불러 모을 때 어설픈 과학용어들로 깝죽대며 대중을 선동하던 3류 학자들과 국회의원 패거리들이 더 큰 문제 아니었던가. 거짓을 정치 에너지로 삼는 세력이 악을 쓰는 동안은 이성과 질서와 가치는 실로 무망하며 절망의 나락이다. 불행히도 이 나라 좌파 경제학은 저주의 굿판을 숭배하는 부두교(敎)로 전락한 지 오래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한국 진보 지성계의 수준이다. 나홀로 필사적으로 짜깁기를 해댔던 박씨가 어찌 문제의 본질일 것인가. 그를 아고라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킬킬댔던 간특한 좌파들이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거짓과 아류들이 공론의 장을 어지럽혀왔던 결과다.

정부가 돈을 풀기만 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명제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세금을 더 매기면 부동산 투기가 잡히고, 대주주를 족치면 주가가 오르고, 건설 원가를 통제하면 분양가가 잡히고, 노조가 강력해지면 임금이 오르고, 일 안 해도 잘 살 수 있고, 김정일을 도와주면 통일이 되고, 평준화를 하면 평등 세상이 오고,생산을 중단하면 환경이 보호되며, 이기심을 부인하면 천국이 오고, 시험을 안 쳐야 실력이 오르고, 재벌을 해체하면 중소기업이 뜨고, 서울을 죽이면 지방이 산다는 따위의 초딩 수준 명제들이 무려 10년을 울려퍼진 것이다. 그러니 경제란 게 무엇이 그렇게 어려울 것이 있겠냔 말이다.

TV와 라디오는 틀었다 하면 엉터리 구호들이요 정치인도 입만 열면 얼토당토 않은 슬로건을 외쳤으니 외로운 투쟁을 해왔던 미네르바를 탓할 이유까지도 없는 일이다. 국회에서 깡패 짓을 하고도 "민주주의가 이겼다. 정치를 회복했다"고 사진찍고 난리를 피우는 터에 그럴싸한 단어들을 짜깁기해 찌라시를 만들어 뿌렸을 뿐인 한낱 장난질 아니었던가.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경제수석과 금통위원까지 지낸 경제학 교수가 그를 '국민의 스승'이라며 숭배의 향불을 태워 올리는 마당이고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이 인터넷의 '집단 지성'을 거론하는 지경이다.

소비대중이 시장 가격을 결정해 가는 대중의 지혜라는 것과 인터넷의 집단 최면을 혼동하는 정도라면 촛불을 칭송해왔던 소위 진보 그룹의 지성이라는 것은 실로 한심한 지경이다. 차라리 우리가 가진 만원짜리를 백만원짜리로 교환해주면 그것으로 살림살이가 100배 좋아진다고 말하는 것이 인터넷 경제학에 더 어울리는 시대가 되었고 또 그렇게 떠들어왔던 진보 경제학이다. 그러니 그들의 말대로라면 미네르바가 국민의 스승은 아니더라도 좌파 학계의 스승 자격은 충분히 있는 셈이다.

경제학이 한낱 주술적 정치 도구로 내려앉은 것은 마르크시즘의 비과학적 도식이,그리고 속류 케인지언이 광범위하게 정치판으로 진출한 결과다. 그것은 올해로 200주년을 맞는 유전학과 진화론이 종종 인종주의와 우생학으로 타락하면서 대중의 폭력을 불렀던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무엇이든 대중화하면 필시 저질화되고 마는 것은 주자학이 속류화하면서 제삿상의 진설법을 다투고 주역이 점집에서 나뒹굴게 되는 것과 같다. 서글픈 일이지만 세계 자본주의와 한국 경제가 완전히 망하는 그날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 50년을 버텨온 국내 좌파 경제학의 실체다. 미네르바 신드롬은 그런 지적 황무지에서 일어난 그들 세계의 작은 에피소드요 종말론적 코미디다.

논설위원 정규제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