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기 제멋대로여서 엉망진창이 된 집안을 뜻한다. 콩가루는 점성이 별로 없어 뭉치기 어렵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흩어지기 쉬운 특성을 갖고 있어 만들어진 표현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을 큰 단위의 가족으로 보노라면 문득 '콩가루 집안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04년 한국 정부는 조흥은행 등 채권단이 쌍용자동차를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하는 걸 지켜봤다.

정부를 한 집안의 가장이라고 했을 때,채무를 갚아주는 조건으로 빚더미에 올라 신용불량자가 된 딸이 중국 사람에게 팔려가는 데 동의한 셈이다.

시집살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실컷 일만 해주다 쫓겨올지도 모른다며 친척들이 말려도 가장은 자유경제 논리를 앞세우며 외면했다. 결국 4년 만에 친정으로 내쳐진 딸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당시 GM이 쌍용을 사겠다고 달려들었으나 인수금액에서 뒤처져 손을 털었다. 지금은 실체마저 사라졌지만 채권단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조흥은행은 GM보다 두 배 가까이 좋은 조건으로 쌍용을 매각했으니 흐뭇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 없는' 결정들이 직접 실행에 옮겨지는 동안에도 딸을 보호하고 자식의 앞날을 걱정해야 할 아버지인 정부는 엄연히 존재했다. 딸을 통해 우리 집안의 정보가 모조리 넘어갈 게 분명한데도 뒷짐만 졌다.

지금 상하이자동차를 욕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게 목적이었으니 이제 그 목적을 달성했을 뿐이다.

시장경제 논리로 봤을 때 오히려 상하이차는 칭찬받아야 할 대상이다. 불과 4년 뒤에 나타날 결과조차 예측 못하고 남들이 조심하라는데도 속아넘어간 아버지를 탓해야 마땅하다.

그보다 5년 전인 1999년 정부는 삼성자동차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퇴출시키며 헐값으로 르노에 팔아치웠다.

자기 자식의 가치를 그토록 평가절하하는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향후 한국 자동차산업을 짊어질 업체로 삼성을 꼽았건만 정부는 앞장서 삼성을 압박했다.

당시 필자가 만난 도요타의 한 임원은 "미래에 우리와 경쟁할 유일한 회사로 삼성을 꼽고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걸림돌을 제거해줬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게 바로 한국 자동차산업이란 자식을 키워 온 아버지의 모습이다. 앞으로 아버지가 쫓겨온 딸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세계 각국이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걸 보면 '자동차'라는 자식이 우리 정부의 지난 결정들처럼 자유시장경제에 무조건 맡겨둘 대상이 아니란 건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는 그렇다치고 자식은 또 어떤가. 얼마 전 현대자동차 노조는 대의원대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파업을 결의했다.

노사가 합의한 '1월 중 전주공장 주간 연속 2교대제 시범 시행안'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노동위원회의 조정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찬반투표 등 절차가 남아 있지만 만약에라도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1987년 노조 설립 이래 1995년을 제외하고 21년간 파업을 해온 셈이다. 이걸 보면 도요타가 왜 현대자동차를 미래의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도대체 지금이 어떤 때인가. 앞으로 1~2년 내에 회사의 생사가 판가름날 수도 있는 중요한 국면을 맞았음에도 태연하게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머릿속이 궁금하다.

한국 국민들이 현대자동차 노조에 얼마나 치를 떠는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회사가 망하는 건 아닌지,월급이 제대로 안 나오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는 이때 현대차 노조는 배짱 좋게도 파업을 결의했다.

얼마나 큰 위기가 와야 콩가루 집안이 정신을 차릴지 아버지나 자식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강호영 오토타임즈 대표 ssyang@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