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이 경기 추락을 막기 위한 추가경정 예산 편성을 추진 중이다.

당초 10조원 안팎으로 얘기되던 것이 20조원으로 늘어나더니 최근엔 '슈퍼 추경'이란 이름 아래 30조원,50조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경기 침체기에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비상 상황에서는 재정지출 규모를 최대한으로 늘려야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이다.

경기 회복만을 생각한다면 100조원이든 200조원이든 마음껏 쏟아붓고 싶지만 재원 조달이 가능한지,재정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추경 30조원 편성시 적자 국채 60조원 찍어야

추경 편성 규모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하는 것이 재원이다. 지난해 예상보다 많이 걷힌 세금(세계잉여금)이나 한국은행 잉여금 등을 일부 활용할 수 있지만 그 돈은 기껏해야 3조~4조원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국채를 발행해 조달해야 한다.

추경 편성 규모에 따라 적자 국채 발행액은 비례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 예산에서 적자 국채는 이미 19조7000억원이 잡혀 있다. 추경으로 30조원을 편성한다면 적자 국채 발행액은 49조7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다 올해 세수는 당초 예산을 짤 때 추정했던 것보다 10조원가량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부족분만큼 적자 국채를 추가로 찍어야 한다. 이른바 '감액 추경'이다.

결국 정부가 발행하는 적자 국채 물량은 추경을 30조원으로 편성할 경우 60조원,50조원으로 잡을 경우 8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기존 발행 물량의 만기 연장을 목적으로 하는 차환용 국채 발행이 44조5000억원으로 잡혀 있는 만큼 신규 물량과 차환 발행을 합친 총 발행 물량은 추경 30조원 가정시 1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이 같은 국채 발행 규모는 신규 물량을 기준으로 하든 총량을 기준으로 하든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이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에도 적자 국채는 10조원,전체 국채 발행액은 27조원이었다.

◆국채 소화 가능할까

30조원의 추경 예산을 편성할 경우 60조원 이상의 국채 신규 물량이 쏟아져 나올 텐데 시장에서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가 우려된다. 정부 당국은 "문제 없이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조차 걱정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미 확정돼 있는 적자 국채 19조7000억원만 하더라도 지난해 예산안 편성 당시 재정부 내에서 "소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두 배가 넘는 규모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권 시장에 미치는 후폭풍이 더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우려된다.

시장에 국채가 쏟아지면 국채 금리는 상승(국채가격 하락)하게 되고 이는 회사채나 양도성 예금증서(CD) 등 시중 금리에 연쇄 반응을 일으켜 시장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

국채보다 상품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회사채는 시장에서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반론을 펴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시중 유동 자금이 500조원에 달하는 등 지금처럼 여유 자금이 풍부한 때도 없었을 것"이라며 "예금 금리는 떨어지고 주식 시장은 겁이 나서 못 들어가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국채만큼 인기 있는 금융 상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30조원이니 50조원이니 하는 얘기가 나왔는데도 채권 시장이 별로 충격받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그 정도 규모의 국채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채권 시장에 형성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구축 효과에 대해서도 정부 측은 다른 시각을 보였다. 재정부 관계자는 "국채를 발행해 경기를 부양했을 때 기업이 누릴 수 있는 이익과 회사채 발행으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비교해 볼 때 국채 발행 쪽의 실익이 더 클 것"이라며 "정책에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게 마련인데 한 쪽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채 소화 어떻게 하나


정부는 국채를 무리 없이 소화하기 위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국채 물량을 대규모로 인수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차피 연기금들도 마땅한 투자 대상이 없어 고심하고 있는 마당이어서 큰 잡음 없이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적자 국채 발행 규모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 지분매각 대금을 활용하는 방안이나 한국은행 잉여금 3조4000억원 가운데 1조5000억원을 추경 편성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120조원에 달하는 머니마켓펀드(MMF) 자금이 국채 인수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 또한 검토 중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만기 1년 이내의 단기 국채를 발행하는 것도 고려 대상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MMF가 잔존 만기 1년 이하 채권에만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아이디어다.

한은이 국채를 채권 시장에서 매입하거나 아예 발행 단계에서 직접 인수하는 방안 역시 거론되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최근 국회 답변을 통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데 한은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다"며 직매입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한은 차입 한도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 대상 목록에 올라 있다. 현행법상 정부는 일시적 자금 부족 등의 경우 한은으로부터 자금을 단기간 빌릴 수 있는데 그 한도를 현행 15조원에서 더 늘리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재정 집행에 필요한 돈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국채 발행 시기나 규모를 여유 있게 정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