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베트남 호찌민시 동코이 거리.베트남인 식당에 들어서자 VTV9이라는 베트남 TV채널이 켜져 있다. 현지인들이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정신없이 빠져 있는 드라마는 권상우,김희선 등 한국의 톱스타들이 등장하는 '한드',슬픈연가였다. 이제 일상이 돼버린 베트남의 한류를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베트남의 한류는 TV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곳 극장가에서는 얼마 전부터 자막 대신 베트남 성우가 더빙을 한 한국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한국영화를 보는 베트남인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다. 이처럼 한류 열풍으로 베트남에서 한인들의 위상은 한껏 높아졌지만 현지 교민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최근 일부 한인들의 몰상식한 행태가 물을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경영난에 빠진 한인 기업주들이 베트남 직원 월급과 세금을 떼먹고 한국으로 야반도주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망친 한인들 대부분이 고용인을 하인 부리듯 다뤄 현지 직원들과 일상적인 마찰도 많았던 터라 교민들의 우려는 더욱 크다. 베트남 교민 정모씨는 "한 기업주가 엉망으로 행동하면 그 마을 전체가 한국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며 "현지 교민 외에도 유흥업소에서 단발적으로 추태를 부리는 한인 관광객들도 한류를 무색하게 하는 반한감정 조성에 일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다 못한 교민사회에서는 한인들의 행태를 바꾸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교민잡지인 '신짜오 베트남'은 3월1일자 특집기사로 '베트남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기이한 모습'을 다뤘다. 베트남 가사 도우미,운전기사를 하인처럼 대하지 말고 존중하자는 경고성 기사다. 영사관에서는 기업인들을 불러 '다른 기업인들을 생각해서라도 야반도주는 하지 말라'는 특별 당부까지 했을 정도다.

현지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동남아 사람이라면 무조건 하대하고 보는 비뚤어진 인종차별 의식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베트남 법인장 김도요 변호사는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현지 직원이 '미스 김은 한국사람답지 않게 화를 내지 않는다'는 말을 해서 민망했다"며 "서양사람들 대하듯 베트남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한 한류로 쌓아올린 한국의 위상은 모래성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