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또 한차례 외환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외신보도를 해명하느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허겁지겁 외신기자들을 만나고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급하게 월스트리트저널에 글을 쓴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외신이 신흥국가의 부도위험 기사를 쓰면서 한국을 파키스탄이나 우크라이나와 같은 범주에 넣고 있으니 윤 장관이나 이 부위원장은 어지간히 속이 상했을 게다. '3월 위기설'이 금융시장을 괴롭히고 있는 터여서 당국자들로선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들을 괴롭히는 3월 위기설은 맞으면서도 틀리는 말이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묻겠지만 위기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위기설이 외환시장의 심각한 불안을 의미한다면 2009년 3월 한국은 위기다. 지난 2월 무역흑자를 30억달러 이상 냈는데도 올 들어 원화 가치가 달러화에 대해 20% 가까이 하락(원 · 달러 환율 상승),세계각국 통화 중 떨어지는 속도로만 보면 '가장 싼 돈'이 되고 말았으니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다. 지난 6일 하루에도 원화가치는 50원을 널뛰는 불안 양상을 보였다. 자국 금융회사들이 몽땅 부도위기에 빠진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의 투자자들은 사정이 다급해지면 달러를 더 빼내갈 수 있다. 그러면 원화환율은 1600원을 훌쩍 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입업자들은 원가상승으로 숨이 막힐 것이다. 키코(KIKO,일종의 환헤지 금융상품)에 든 중소업체들의 신음소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험이 높아지면 원화값은 더 요동칠 수 있다. 배를 지어 달라는 외국 선주들이 주문을 취소해버리면 조선회사들은 미리 받아둔 달러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1분기 성장률이 -4~-5%로 곤두박질치면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런 요인만으로 보면 위기임에 틀림없다. 정부가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게 이 대목이다. "외환시장은 장담할 수 없다. 환율이 얼마나 더 요동칠지 모른다. 그런 움직임에 너무 놀라지 말라"고.

그러면서 위기설을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국가 부도위기쯤으로 생각한다면 터무니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줘야 한다. 3월 위기설은 일본계 자금이 3월 결산기를 맞아 엔화를 빼내가면서 촉발된다는 시나리오다. 그 시나리오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잘 설명해야 한다. 한국이 올해 외국에 갚아야 할 외채가 1940억달러로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화 헤징 등을 뺀 순외채는 1550억달러이고 우리가 쌓아둔 외환보유액은 2015억달러다. 더군다나 외채의 90%가 연장되고 있어 디폴트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경상거래에서도 지급해야 할 달러보다 벌어들이는 달러가 많다. 올해 100억달러 이상의 경상흑자가 전망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을 디폴트 위기로 과대포장하는 일부 주장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외환시장에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던 작년 9월 위기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졌다. 3월 위기설도 그렇게 수그러들 게다. 떠도는 위기설과 그 실상을 국내외에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요즘 원화 약세(엔화 강세)덕에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일본기업들이 많다. 위기설을 그들이 먼저 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