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서울 강남 · 서초 · 송파 3개구에 대한 투기지역 · 투기과열지구 해제 발표를 앞두고 강남권 아파트 호가가 치솟고 있다. 매도호가와 매수호가 격차가 벌어지면서 거래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이 같은 호가 상승이 실거래가 '반짝 상승' 정도의 효과를 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실제 투기지역이 해제되면 투자수요 외에 자녀 증여와 같은 수요가 몰려 상승폭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개포주공 일주일새 호가 5000만원 급등

22일 현지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는 최근 일주일 동안에만 주택 크기별로 2000만~5000만원 매도호가가 올랐다. 지난주 초 10억5000만원이었던 주공1단지 59㎡형은 현재 11억원을 호가한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이달 안에 강남권을 투기지역에서 해제하겠다고 밝히면서 집주인들이 다들 호가를 높였다"며 "집주인과 수요자 간의 호가 격차가 3000만~4000만원에서 5000만~7000만원으로 벌어져 오른 가격으로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지난주 주택 크기 별로 2000만~3000만원 오르면서 매수자들이 관망세다.

강남권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경 선정 베스트공인중개사인 서초동 양지공인의 이덕원 사장은 "잠원동 한신13차 115㎡(35평)형 집주인이 7억5000만원에 매물을 내놨었다가 매수자가 없는데도 투기지역 해제에 따른 가격 상승을 기대해 회수했다"고 말했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유엔알컨설팅의 박상언 사장은 "고객들이 1~2월에 강남권 3개구뿐만 아니라 인근 강동구 아파트까지 급매물 위주로 많이 사들였으나 이달 들어서는 실제 계약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경기 불황 심화로 상승세 지속 한계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권 투기지역 해제는 지난해 11월 강남권 외 수도권 투기지역 해제에 비해서는 파급력이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투기지역에서 해제되면 매매가 6억원을 넘는 주택을 살 때 적용되는 LTV(담보인정비율)가 집값의 40%에서 60%로 완화되고 DTI(연소득 대비 대출비율) 40% 규제가 없어진다. 6억원을 넘는 고가 아파트가 많은 강남권에서 대출을 받아 집사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셈이다.

지난해 말에 비해 대출금리도 크게 낮아졌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3개월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지난해 10월24일 최고치(연 6.18%)에서 지난 14일엔 연 2.43%로 떨어졌다.

그러나 실물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있고 이미 투기지역 해제 기대감이 상당 부분 집값에 반영돼 큰 폭의 상승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강남권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반짝 상승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아직도 강남 집값이 비싼 상태고 실물경기도 좋지 않아 상승세가 오래가지 않고 오히려 다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합수 국민은행 PB사업본부 부동산팀장은 "부자들이 부동산 투자에 흥미를 많이 잃어 투기지역 해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기지역이 해제돼도 은행 대출 문턱이 급격히 낮아지기 힘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고객이 투기지역이 아닌 강동구의 한 아파트를 사려고 은행에 갔는데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대출을 안 해줘서 결국 다른 금융회사에서 대출 받았다"며 "은행이 부실대출 우려로 상환능력을 까다롭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증여 수요로 당분간 오름세 지속될 수도

전문가들은 다만 부자들의 자녀 증여와 같은 투자 외 수요가 뒷받침되면 상승세가 다소 길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공시지가로 증여세가 매겨지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 침체시기에 증여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박합수 팀장은 "자녀들을 위해서 5억~8억원 짜리 강남권 주택을 사주려는 부자들이 상당수 눈에 띄고 있다"며 "이들은 대출을 받으면 자금 노출 걱정도 적고 강남 집값이 향후 올라도 시세차익은 증여세 과세 대상이 아니어서 현금 증여에 비해 크게 유리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동현 대한생명 부동산전문위원은 "강서구 마곡지구 등에서 토지보상금을 받은 부자들이 증여를 위한 강남권 아파트 매입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달러 강세에 따른 환차익을 노린 해외교포들의 투자도 변수로 꼽힌다.

임도원/이호기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