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은행들은 최근 약 3조원을 출자해 민간 배드뱅크(부실채권처리 전담은행)를 만들기로 했다. 민간 배드뱅크는 그동안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독점했던 은행권의 부실채권 매입 업무를 일정 부문 담당하게 된다. 설립 준비 단계에서 잡음이 생기고는 있지만 민간 배드뱅크가 만들어지면 지지부진한 기업 구조조정이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민간 배드뱅크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은행들은 가능하면 많은 은행들이 여기에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 은행들이 힘을 합쳐야 부실채권을 헐값에 넘기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분담금이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농협 광주은행 등이 태스크포스팀(TFT) 구성에 합의한 상태이며 앞으로 5~7개의 은행이 더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와중에 참여의사를 밝히지 않은 곳들이 있다.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이다. 또다른 외국계 은행인 외환은행은 민간 배드뱅크 참여 쪽으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 결정을 하지 않고 있는 두 은행은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가입 문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간 배드뱅크에 대한 방침을 세우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은행권의 최대 화두인 사안임에도 가입할지를 묻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참여 여부에 대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는 논리다.

외국계 은행의 튀는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가 은행에 자본확충펀드를 지원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외국계들은 거부했다. 당시에는 경영권 간섭 우려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 은행권의 반응이다. 은행들이 힘을 합쳐도 시원찮을 상황에 외국계 은행들이 팔짱을 끼고 판세만 살피고 있다는 불만이다. 민간 배드뱅크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은행의 관계자는 "함께 일하는게 힘겹다"고 지적했다.

꼭 은행들의 이익이 아니더라도 민간 배드뱅크는 중요하다. 은행들이 부실 채권을 높은 값에 팔수 있게 되면 대손충당금을 쌓는 것도 그만큼 수월해지며,이는 곧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외국계 은행들의 행동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