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국 경제, 中·日 샌드위치에서 벗어나 ‘약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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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좋은 한국제품, 중국산보다 싸다”… 위기를 기회로
"한국은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의 협공을 받아 마치 넛-크랙커 속에 끼인 호두처럼 됐다."
외환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10월 컨설팅업체 부즈앨런&해밀턴은 '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이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넛-크랙커(Nut-cracker)'론이 우리 경제를 향해 쏟아낸 비관론이라면 2007년 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제기한 샌드위치론은 안주를 경계하는 비판에 가깝다.
당시 이 회장은 "한국은 일본과의 기술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중국이 저가공세로 쫓아오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우리나라의 입지를 샌드위치에 비유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경제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들이 일본산과 품질 수준은 엇비슷하면서 값은 싸고, 중국산과 비교하면 월등히 기술력에 앞서며 가격차는 크게 나지 않는다는 게 주요 논리다.
탈(脫)샌드위치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 메이드 인 코리아의 선전
해외 대기업들이 부품이나 소재 구매처를 잇따라 한국 기업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 탈샌드위치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원화의 '나홀로 약세'(고환율)에 힘입어 조달 가격이 낮아지면서 아웃소싱선을 한국으로 돌리고 있는 것.
환율이 높아지고 원화 가격이 낮아지면서 달러로 표시되는 한국산 제품 가격이 그만큼 떨어진 것이다.
철옹성같던 일본 시장이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예컨대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올초부터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처음 공급하기 시작한 포스코는 미국 유럽 등 다른 지역 완성차 업체에도 차강판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 1월 "생산비 절감 차원에서 앞으로 일본 내수시장용 차량에 포스코의 강판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포스코의 강판 품질이 국제적으로 입증된 데다 원 · 엔 환율 급등으로 구매가격을 낮출 수 있어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온 '자국산 강판 사용 원칙'을 포기했다.
해외 자동차부품 업계도 거래처를 한국 기업들로 확대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부품 금형 생산 업체인 파베스트는 최근 주물 조달처를 일본에서 한국 기업들로 바꿨다.
지금까지는 자국 업체와 거래했지만 자동차시장 침체와 맞물려 수주 단가가 하락하자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만족시켜 줄 수 있는 한국 기업들로 눈을 돌린 것이다.
미국, 유럽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디팍 파텔 구매담당 매니저는 최근 '바이코리아 2009' 행사에 참가해 "품질,가격,기술 지원 등 3박자를 갖춘 한국산 부품 구매 규모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부품 업체인 이모텍은 정전기로부터 내부회로 손실을 막아주는 칩 배리스터를 개발,애플사의 주력 제품인 아이폰에 핵심 부품으로 공급하고 있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 힘입어 일본 TDK와 독일 엡코스 등 선발 업체들을 제친 결과다.
⊙ "중국산보다 가격이 싸기는 처음"
원화가치 하락 덕분에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국내 수출기업들에 새로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캐나다에 거점을 두고 있는 레이저 프린터용 재활용 토너 카트리지를 생산하는 C사 대표는 "위안화 강세 덕분에 현지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우리 제품이 중국산보다 10~20% 저렴해졌다"며 "중국산에 비해 가격 우위를 점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작년 1월(평균) 100엔당 872원이던 원 · 엔 기준 환율은 지난 8일 현재 1431원으로 60%가량 급등했다.
원 · 위안 환율 역시 지난해 1월 130원에서 이날 194원까지 뛰어올랐다.
미국 플로리다에 의료용 체혈침을 수출하고 있는 E사 대표는 "멜라민 파동 이후 중국산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다"며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출환경도 좋아져 작년 4분기 수출액이 전년 대비 3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꾸준히 쌓아 온 브랜드 효과도 이 같은 변화에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창엽 KOTRA 케냐 나이로비 센터장은 "삼성 휴대폰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식돼 고위 공직자 접대용 선물로 활용될 정도"라며 "중국산 식품의 멜라민 파동까지 겹쳐 조금 비싸더라도 한국산을 구매하겠다는 바이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 품질, 디자인 업그레이드가 비결
'메이드 인 코리아'의 질주는 일본의 높은 품질,중국의 낮은 가격에 끼여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던 한국 기업의 '위기에 강한 DNA'가 빚은 작품이다.
원화의 '나홀로 약세'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사활을 건 품질 향상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탈샌드위치 효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년 전 외환 위기를 겪으며 글로벌 어떤 기업과 견줘봐도 효율성을 갖춘 우리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약이 되고 있고, 품질과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며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시장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온 게 불황 속에 빛을 발한다는 얘기다.
자동차와 휴대폰 등 주요 품목에서 한국 기업들의 약진은 눈부시다.
작년까지만 해도 터키 시장에서 6위에 머무른 현대차는 시장 점유율을 14.1%로 두 배 끌어올리며 포드(15.1%)에 이어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유럽 전체로는 기아차와 함께 시장 점유율 4.3%로 도요타와 1%포인트대 격차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과 산업계가 충격 속을 헤맨 지 6개월.
GM 포드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 '빅3'와 도요타 소니 등 글로벌 간판 기업들은 물론 많은 국내 기업들이 여전히 어디로 튈지 모를 장기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민첩한 추격자로서 실력을 쌓아온 자동차 전자 LCD(액정표시장치) 등 한국의 주력 기업들은 세계 산업지도 재편과 신(新)시장 질서 구축 과정에서 빠르게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호황기에 대비해 밀어붙이고 있는 '점유율 높이기' 승부수를 품질 경쟁력과 환율 효과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각국 언론은 위기에 단련된 한국의 공격적 DNA(유전인자)와 '하면 된다'는 본능적 적응력,끈질긴 도전을 분석하는 기사를 내놓기에 바쁜 모습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GM과 도요타가 흔들리면서 현대차가 새 강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실제로 현대 · 기아차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자동차 회사 중 유일하게 점유율을 늘렸다.
한국산 LCD 기판 점유율은 대만 AUO 등 경쟁 업체들과 달리 상승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TV의 신화 소니에 한발 앞서 빛의 반도체 LED(발광다이오드)를 적용한 신제품을 세계에 동시 출시,LED TV 혁명을 주도하고 나섰다.
"글로벌 소비자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소니의 그림자를 지우겠다"는 삼성전자의 호언이 거짓말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박동휘 한국경제신문 기자 donghuip@hankyung.com
"한국은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의 협공을 받아 마치 넛-크랙커 속에 끼인 호두처럼 됐다."
외환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10월 컨설팅업체 부즈앨런&해밀턴은 '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이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넛-크랙커(Nut-cracker)'론이 우리 경제를 향해 쏟아낸 비관론이라면 2007년 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제기한 샌드위치론은 안주를 경계하는 비판에 가깝다.
당시 이 회장은 "한국은 일본과의 기술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중국이 저가공세로 쫓아오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우리나라의 입지를 샌드위치에 비유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경제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들이 일본산과 품질 수준은 엇비슷하면서 값은 싸고, 중국산과 비교하면 월등히 기술력에 앞서며 가격차는 크게 나지 않는다는 게 주요 논리다.
탈(脫)샌드위치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 메이드 인 코리아의 선전
해외 대기업들이 부품이나 소재 구매처를 잇따라 한국 기업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 탈샌드위치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원화의 '나홀로 약세'(고환율)에 힘입어 조달 가격이 낮아지면서 아웃소싱선을 한국으로 돌리고 있는 것.
환율이 높아지고 원화 가격이 낮아지면서 달러로 표시되는 한국산 제품 가격이 그만큼 떨어진 것이다.
철옹성같던 일본 시장이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예컨대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올초부터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처음 공급하기 시작한 포스코는 미국 유럽 등 다른 지역 완성차 업체에도 차강판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 1월 "생산비 절감 차원에서 앞으로 일본 내수시장용 차량에 포스코의 강판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포스코의 강판 품질이 국제적으로 입증된 데다 원 · 엔 환율 급등으로 구매가격을 낮출 수 있어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온 '자국산 강판 사용 원칙'을 포기했다.
해외 자동차부품 업계도 거래처를 한국 기업들로 확대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부품 금형 생산 업체인 파베스트는 최근 주물 조달처를 일본에서 한국 기업들로 바꿨다.
지금까지는 자국 업체와 거래했지만 자동차시장 침체와 맞물려 수주 단가가 하락하자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만족시켜 줄 수 있는 한국 기업들로 눈을 돌린 것이다.
미국, 유럽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디팍 파텔 구매담당 매니저는 최근 '바이코리아 2009' 행사에 참가해 "품질,가격,기술 지원 등 3박자를 갖춘 한국산 부품 구매 규모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부품 업체인 이모텍은 정전기로부터 내부회로 손실을 막아주는 칩 배리스터를 개발,애플사의 주력 제품인 아이폰에 핵심 부품으로 공급하고 있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 힘입어 일본 TDK와 독일 엡코스 등 선발 업체들을 제친 결과다.
⊙ "중국산보다 가격이 싸기는 처음"
원화가치 하락 덕분에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국내 수출기업들에 새로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캐나다에 거점을 두고 있는 레이저 프린터용 재활용 토너 카트리지를 생산하는 C사 대표는 "위안화 강세 덕분에 현지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우리 제품이 중국산보다 10~20% 저렴해졌다"며 "중국산에 비해 가격 우위를 점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작년 1월(평균) 100엔당 872원이던 원 · 엔 기준 환율은 지난 8일 현재 1431원으로 60%가량 급등했다.
원 · 위안 환율 역시 지난해 1월 130원에서 이날 194원까지 뛰어올랐다.
미국 플로리다에 의료용 체혈침을 수출하고 있는 E사 대표는 "멜라민 파동 이후 중국산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다"며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출환경도 좋아져 작년 4분기 수출액이 전년 대비 3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꾸준히 쌓아 온 브랜드 효과도 이 같은 변화에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창엽 KOTRA 케냐 나이로비 센터장은 "삼성 휴대폰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식돼 고위 공직자 접대용 선물로 활용될 정도"라며 "중국산 식품의 멜라민 파동까지 겹쳐 조금 비싸더라도 한국산을 구매하겠다는 바이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 품질, 디자인 업그레이드가 비결
'메이드 인 코리아'의 질주는 일본의 높은 품질,중국의 낮은 가격에 끼여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던 한국 기업의 '위기에 강한 DNA'가 빚은 작품이다.
원화의 '나홀로 약세'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사활을 건 품질 향상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탈샌드위치 효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년 전 외환 위기를 겪으며 글로벌 어떤 기업과 견줘봐도 효율성을 갖춘 우리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약이 되고 있고, 품질과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며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시장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온 게 불황 속에 빛을 발한다는 얘기다.
자동차와 휴대폰 등 주요 품목에서 한국 기업들의 약진은 눈부시다.
작년까지만 해도 터키 시장에서 6위에 머무른 현대차는 시장 점유율을 14.1%로 두 배 끌어올리며 포드(15.1%)에 이어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유럽 전체로는 기아차와 함께 시장 점유율 4.3%로 도요타와 1%포인트대 격차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과 산업계가 충격 속을 헤맨 지 6개월.
GM 포드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 '빅3'와 도요타 소니 등 글로벌 간판 기업들은 물론 많은 국내 기업들이 여전히 어디로 튈지 모를 장기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민첩한 추격자로서 실력을 쌓아온 자동차 전자 LCD(액정표시장치) 등 한국의 주력 기업들은 세계 산업지도 재편과 신(新)시장 질서 구축 과정에서 빠르게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호황기에 대비해 밀어붙이고 있는 '점유율 높이기' 승부수를 품질 경쟁력과 환율 효과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각국 언론은 위기에 단련된 한국의 공격적 DNA(유전인자)와 '하면 된다'는 본능적 적응력,끈질긴 도전을 분석하는 기사를 내놓기에 바쁜 모습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GM과 도요타가 흔들리면서 현대차가 새 강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실제로 현대 · 기아차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자동차 회사 중 유일하게 점유율을 늘렸다.
한국산 LCD 기판 점유율은 대만 AUO 등 경쟁 업체들과 달리 상승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TV의 신화 소니에 한발 앞서 빛의 반도체 LED(발광다이오드)를 적용한 신제품을 세계에 동시 출시,LED TV 혁명을 주도하고 나섰다.
"글로벌 소비자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소니의 그림자를 지우겠다"는 삼성전자의 호언이 거짓말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박동휘 한국경제신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