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증시로 돌아오고 있다. 외국인은 '위기설'이 나돈 이달에만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2000억원 넘게 주식을 순매수했다. 월간으로는2007년 4월(2조7417억원) 이후 거의 2년 만의 최대 규모다.

이 같은 외국인 매수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이달 들어 17% 올라 2001년 11월 이후 7년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원 · 달러 환율 안정과 글로벌 금융위기 진정 등 대내외 여건이 개선되고 있어 외국인의 주식 매입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이 많다.


◆"셀 코리아 끝났다" 분석

26일 코스피지수는 1243.80으로 14.78포인트(1.20%) 올라 5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80억원 정도를 순매수해 8일 연속 '사자' 행진을 벌였다. 이에 따라 외국인은 이달에만 1조2033억원어치를 사들여 올 누적 순매수액이 1조1000억원을 넘어섰다. 아직 3월이긴 하지만 외국인이 연간으로 순매수를 보이기는 2004년 이후 5년 만이다.

외국인은 정보기술(IT) 조선 자동차 철강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업종의 간판주를 집중적으로 사모으고 있다. 올 들어 삼성전자를 1조167억원 순매수한 것을 비롯 LG디스플레이 현대중공업 현대모비스 포스코 LG전자 등을 1000억원 이상 매수했다. 반등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 증권주도 타깃이다.

외국인의 '컴백'으로 증시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이달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17.0%에 달해 2001년 11월(19.7%) 이후 최고치다. 3월 상승률은 아시아 증시에서 일본 중국 홍콩 등을 앞서는 것으로 대만(18.2%)에 이어 2위다.

전문가들은 4년 이상 지속돼 온 외국인의 '셀 코리아'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05년 3조원을 순매도하며 한국 증시에서 떠나기 시작한 외국인이 2006년 10조원,2007년 24조원,2008년 33조원 등으로 주식을 정리해 온 것과는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관측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해결책이 구체화되고 있고 미 주택 관련 지표들이 바닥을 쳤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투자심리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외국인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일제히 매수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대만 증시에서 외국인은 올 들어 2월 말까지 약 20억달러 순매도했지만 이달 들어서는 5억달러 가까이 순매수하고 있다. 태국 인도 등도 비슷한 양상이다.

안승원 UBS증권 전무는 "외국계 자금의 유동성이 좋아지면서 아시아 증시에서 외국인이 순매수로 돌아서고 있다"며 "각국 정부가 강도 높은 경제 회생 정책을 내놓은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매도 공세로 외국인의 한국 주식 보유 비중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도 추가 매수에 기대를 걸게 한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2004년 말 42%에 달했으나 현재 28%로 급감한 상태다.

서영호 JP모간증권 전무는 "글로벌이머징마켓펀드 내에서 한국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며 "올 들어 한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자 외국인이 극단적으로 줄여놓은 한국 비중을 조금씩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환율 안정은 외국인의 귀환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이재원 ABN암로증권 한국부대표는 "주로 중국과 일본계 자금이 원화 강세를 이용해 환차익과 시세차익을 동시에 노리고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1300선에서 1차 테스트 받을 듯

외국인이 매수 기조로 전환했지만 본격적으로 한국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금융시장은 호전되고 있지만 기업이익과 실물경기 등 펀더멘털 측면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안 전무는 "기업실적 전망이 상향 조정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직 없고 시중 부동자금이 증시로 들어오는 속도도 느리다"며 "강한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지 않는다면 외국인은 1300선에서 일단 차익을 실현하고 다음 기회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택규 대우증권 국제영업부장도 "지수가 오르니까 시장을 따라가야 하는 외국계 펀드 자금이 들어오고 있지만 이 추세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며 "기업이익 측면에서 새로운 상승 동력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율도 변수다. 서 전무는 "외국계 뮤추얼펀드는 기본적으로 환헤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원화 변동성이 커지면 한국 주식에 오래 투자할 수가 없다"며 "최근의 분위기가 이어지려면 환율이 적정 수준에서 안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과거처럼 공격적인 매도로 다시 돌아설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경기 침체로 아직은 자금이 증시에 본격적으로 유입될 여건은 갖춰지지 않았다"며 "당분간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은 완만한 매수 우위 입장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해영/강지연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