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강국] "임자, 해봤어?" 정주영 회장의 한마디…현대重 창업드라마는 지금도 진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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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경받는 기업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서비스의 명가(名家)로 이름난 리츠칼튼 호텔은 '와우 이야기'라는 감동 컨셉트로 세계 최고의 호텔 체인을 구축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2월 어느 날,호텔 바에 근무하던 프랜에게 딕과 제인이 하와이풍의 셔츠를 입고 들어와서는 마이타이 칵테일을 주문했다. 그들은 좀 우울해 보였다. 둘은 얼마 전에 결혼했는데 신혼여행을 하와이 리츠칼튼으로 가려다가 딕이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게 됐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화학치료를 받기 위해 일정을 앞당겨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와 하와이 신혼여행의 흉내라도 내보기로 한 것이다.
얘기를 듣던 프랜은 잠시 뒤 다른 사람에게 바를 맡기고 매니저를 찾아서 함께 연회장 소품실로 갔다. 그리고는 낚시용 그물이며 장식용 불가사리,조가비,훌라 무용수 사진을 담은 포스터 등 하와이를 연상시키는 물건을 죄다 끄집어내 딕과 제인의 방을 꾸몄다. 심지어 아이스박스에 모래를 채우고 '딕과 제인의 전용 해변'이라는 팻말을 꽂아놓기도 했다.
# 전 직원이 공유하는 고객 서비스 데이터
매니저는 하와이풍 셔츠를 입고 부부에게 돌아가 무료 샴페인이 기다리는 '하와이 신혼여행 특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리고 사흘 동안 호텔 직원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하와이 신혼여행' 패키지를 제공했다.
결과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들이 돌아가서 LA여행이 어땠는지 묻는 친구들에게 어떤 얘기를 했을지 분명하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누구나 리츠칼튼에 묵고 싶어할 것이고 여기저기 이야기를 전하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노련한 본사 마케팅 직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로 호텔사업의 핵심인 평직원과 고객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였던 것이다.
리츠칼튼 직원들은 현장 교대 시간에 이처럼 감동적인 '와우 이야기'를 서로 공유한다. 그래서 세계에 퍼져 있는 호텔 체인의 3만여 직원 모두가 이 같은 이야기와 고객들의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 '5만분의 1 지도 신드롬' 지금도 계속
고 정주영 회장의 현대중공업 창업 일화도 '파격과 배짱의 드라마'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는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와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사진,5만분의 1 지도 한 장,남의 회사에서 빌린 26만t급 유조선 도면만 달랑 들고 '봉이 김선달'처럼 전 세계의 선주들을 찾아다녔다. 이 같은 불굴의 정신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창사 11년 만에 수주 · 건조량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글로벌 톱에 올랐고 지금도 오대양 선박의 15%를 만들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정주영 스토리'는 지난해 각각 15초와 30초짜리 광고로 제작돼 다시 한번 '재도약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임자,해봤어"로 대변되는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창립자 이야기는 현대중공업의 기업 정신을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했다. 그의 '5만분의 1 지도' 이야기는 지금도 라디오 프로그램의 패러디 코너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 행복한 리복 '주카리'
또 다른 이야기는 리복의 '주카리(놀이)' 프로그램이다. 리복은 스토리텔링에 펀(fun) 마케팅까지 접목하며 여성 소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공연 '태양의 서커스'와 손잡고 신개념 운동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서커스처럼,어린 시절의 꿈처럼 그네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재미있게 날씬해지라"고 권한 것이다.
지난달 초 한국과 미국 영국 스페인 멕시코 홍콩 등 11개국에서 선보인 '주카리' 프로그램은 기존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수준이 아니라 새 시장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모델을 보여줬다. 모든 여성은 날씬해지기 위해 운동을 한다. 그러나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소비자들이 운동을 '일'처럼 느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 과정을 '놀이' 컨셉트와 연계시켜 즐기도록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주카리'다.
리복은 20여년 전에도 여성들을 대상으로 에어로빅 마케팅을 펼쳐 성공했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여성의 신나는 운동이라는 스토리 라인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리복은 태양의 서커스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여성 스포츠 라인 '온더무브'와 '피너클'도 함께 내놨다. '주카리'에 맞는 의류와 신발,가방 등 파생상품을 즐기면서 '행복한 놀이 운동'에 동참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 카네기멜런대 로저 샹크 교수의 설명처럼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스토리와 들어온 이야기'로 세상을 이해한다. "상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사람을 정의하듯 기업도 회사가 만들어낸 스토리와 주변에서 만든 이야기로 정의된다. "
이는 고객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스토리텔링이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것을 입증시켜주는 말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바람이 세차게 불던 2월 어느 날,호텔 바에 근무하던 프랜에게 딕과 제인이 하와이풍의 셔츠를 입고 들어와서는 마이타이 칵테일을 주문했다. 그들은 좀 우울해 보였다. 둘은 얼마 전에 결혼했는데 신혼여행을 하와이 리츠칼튼으로 가려다가 딕이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게 됐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화학치료를 받기 위해 일정을 앞당겨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와 하와이 신혼여행의 흉내라도 내보기로 한 것이다.
얘기를 듣던 프랜은 잠시 뒤 다른 사람에게 바를 맡기고 매니저를 찾아서 함께 연회장 소품실로 갔다. 그리고는 낚시용 그물이며 장식용 불가사리,조가비,훌라 무용수 사진을 담은 포스터 등 하와이를 연상시키는 물건을 죄다 끄집어내 딕과 제인의 방을 꾸몄다. 심지어 아이스박스에 모래를 채우고 '딕과 제인의 전용 해변'이라는 팻말을 꽂아놓기도 했다.
# 전 직원이 공유하는 고객 서비스 데이터
매니저는 하와이풍 셔츠를 입고 부부에게 돌아가 무료 샴페인이 기다리는 '하와이 신혼여행 특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리고 사흘 동안 호텔 직원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하와이 신혼여행' 패키지를 제공했다.
결과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들이 돌아가서 LA여행이 어땠는지 묻는 친구들에게 어떤 얘기를 했을지 분명하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누구나 리츠칼튼에 묵고 싶어할 것이고 여기저기 이야기를 전하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노련한 본사 마케팅 직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로 호텔사업의 핵심인 평직원과 고객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였던 것이다.
리츠칼튼 직원들은 현장 교대 시간에 이처럼 감동적인 '와우 이야기'를 서로 공유한다. 그래서 세계에 퍼져 있는 호텔 체인의 3만여 직원 모두가 이 같은 이야기와 고객들의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 '5만분의 1 지도 신드롬' 지금도 계속
고 정주영 회장의 현대중공업 창업 일화도 '파격과 배짱의 드라마'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는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와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사진,5만분의 1 지도 한 장,남의 회사에서 빌린 26만t급 유조선 도면만 달랑 들고 '봉이 김선달'처럼 전 세계의 선주들을 찾아다녔다. 이 같은 불굴의 정신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창사 11년 만에 수주 · 건조량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글로벌 톱에 올랐고 지금도 오대양 선박의 15%를 만들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정주영 스토리'는 지난해 각각 15초와 30초짜리 광고로 제작돼 다시 한번 '재도약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임자,해봤어"로 대변되는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창립자 이야기는 현대중공업의 기업 정신을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했다. 그의 '5만분의 1 지도' 이야기는 지금도 라디오 프로그램의 패러디 코너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 행복한 리복 '주카리'
또 다른 이야기는 리복의 '주카리(놀이)' 프로그램이다. 리복은 스토리텔링에 펀(fun) 마케팅까지 접목하며 여성 소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공연 '태양의 서커스'와 손잡고 신개념 운동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서커스처럼,어린 시절의 꿈처럼 그네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재미있게 날씬해지라"고 권한 것이다.
지난달 초 한국과 미국 영국 스페인 멕시코 홍콩 등 11개국에서 선보인 '주카리' 프로그램은 기존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수준이 아니라 새 시장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모델을 보여줬다. 모든 여성은 날씬해지기 위해 운동을 한다. 그러나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소비자들이 운동을 '일'처럼 느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 과정을 '놀이' 컨셉트와 연계시켜 즐기도록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주카리'다.
리복은 20여년 전에도 여성들을 대상으로 에어로빅 마케팅을 펼쳐 성공했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여성의 신나는 운동이라는 스토리 라인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리복은 태양의 서커스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여성 스포츠 라인 '온더무브'와 '피너클'도 함께 내놨다. '주카리'에 맞는 의류와 신발,가방 등 파생상품을 즐기면서 '행복한 놀이 운동'에 동참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 카네기멜런대 로저 샹크 교수의 설명처럼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스토리와 들어온 이야기'로 세상을 이해한다. "상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사람을 정의하듯 기업도 회사가 만들어낸 스토리와 주변에서 만든 이야기로 정의된다. "
이는 고객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스토리텔링이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것을 입증시켜주는 말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