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햅번 예쁜 발엔 '페라가모'
귀족 부인 이름딴 명품 '고디바'
불황일수록 더 빛나는 '영웅 코드'

아이젠하워와 맥아더,푸치니,코난 도일에겐 공통 분모가 있다. 이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파커' 제품과 함께했다.

아이젠하워는 2차대전의 종식을 알리는 파리 협정문에 파커 만년필로 서명했다. 맥아더 장군은 일본의 항복문서에 파커 펜으로 사인했다. 푸치니가 오페라 '라보엠'의 선율을 오선지에 옮길 때나 코난 도일이 소설 《셜록 홈즈》를 집필할 때 쓴 것도 파커였다.

파커는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펜' 시리즈 광고를 통해 이러한 스토리를 전파시켰다. 사람들의 뇌리에 '파커 제품은 중차대한 업무에 잘 어울린다'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이다.

스토리 텔링의 요소 중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영웅'이다. 대중은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쉽게 매료된다. 영웅들의 얘기는 감동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다. 전파력도 빠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소비자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힌다. 그래서 잘나가는 기업들은 영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영웅 스토리'는 요즘 같은 불황기일수록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광고회사 오리콤의 허웅 브랜드전략연구소장은 "불경기엔 반응이 즉각적인 마케팅 기법을 선호하는데 그런 면에서 영웅 스토리가 효과적"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무조건 영웅을 만들어 낸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기업과 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파커의 전략은 '영웅 마케팅'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보석 브랜드 '쇼메'가 나폴레옹 이야기로 급성장한 것도 영웅 마케팅의 성공 사례다. 1780년 어느날 밤 파리 생토노레가의 작은 보석상 쇼메에 누군가에게 쫓기던 한 청년이 뛰어들어왔다. 주인은 그를 숨겨 주고 돌봐 줬다. 청년은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가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대관식에 필요한 왕관 등 장신구를 모두 쇼메에 의뢰했다. 부인인 조세핀의 결혼 예물도 맡겼다. '나폴레옹이 선택한 보석'이라는 후광 효과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쇼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스토리 텔링의 중심 축인 '영웅'은 플라톤의 5원소 중 '흙'에 해당한다. 그만큼 활용 범위와 폭이 넓다. 위대하고 강한 이미지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영웅 스토리로 활용할 수 있다.

벨기에의 명품 초콜릿 '고디바'가 그 예다. 고디바는 11세기 영국 코번트리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의 부인 이름이다. 그녀가 남편에게 "농민들의 세금이 과중하니 줄여 달라"고 부탁하자 남편은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돌면 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알몸으로 말에 올라 거리로 나서자 농민들은 모두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린 채 부인의 고귀한 품성에 감사의 마음을 보냈다. 그녀의 고결한 정신과 희생은 고디바 제품의 '순수하면서도 귀족적'인 이미지로 이어졌고 고디바는 세계적인 명품 초콜릿의 대명사가 됐다. 고디바의 패키지에는 말을 탄 고디바 부인의 모습이 심벌로 그려져 있다.

고디바가 귀족 부인의 '아름다운 영혼'과 '맛'을 접목시켰다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는 유명 여배우의 '아름다운 이미지'와 '멋'을 연계시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페라가모' 하면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먼저 떠오른다. 헵번은 페라가모 마니아로 유명하다. 키가 크고 늘씬했던 헵번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너무 큰 발이었다. 예쁜 구두를 신고 싶었지만 늘 발이 받쳐 주지 않아 속상해하는 그녀를 위해 페라가모는 '헵번 슈즈'를 만들어 냈다. 이후 페라가모 신발은 불티나게 팔렸고,여기에 마릴린 먼로가 가세하자 매출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

영웅은 때로 만들어 진다. 필립모리스의 '말보로' 담배는 '가상의 영웅'으로 승부를 걸었다. 원래 말보로는 여성용 필터 담배였다. 남성 위주의 담배 시장에서 순한 담배는 성장 가능성이 낮았다. 고민하던 회사는 가상의 인물 '말보로 맨'을 만들어 냈다. 미국 서부 출신으로 손등에 문신을 새긴 남자.카우보이 모자를 비스듬히 걸치고 담배를 입에 문 채 포즈를 취한 말보로 맨은 전 세계 남성들에게 '진짜 사나이'의 상징으로 추앙받게 됐다. 여성들에겐 멋진 남성상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말보로는 바람과 같은 자유,영원한 대자연,강인한 독립정신을 담은 브랜드가 됐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