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이 주일의 칼럼) 방망이만 있으면 韓銀法 고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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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규 재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 한국경제신문 4월28일자 A34면
국회의원이라고 마음대로 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설익은 아이디어로 방망이 땅땅 두드린다면 오히려 공해요 법 정신의 훼손이며 그 법에 복종해야 할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판사 출신인 모 국회의원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법에 따라 근엄하게도 판사직무를 수행해 왔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한국은행법 개정 문제도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한마디로 한은법은 국회의원 몇 명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화폐가치를 어떻게 유지하고 지킬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나라경제를 어떤 의사결정 프로세스 위에 놓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다.
한은법 제1조 목적조항을 바꾸는 것이 단순히 한은의 업무수행 절차를 고치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물가안정만을 규정할 것인지, '금융안정 기능'을 명기할 것인지는 중앙은행의 본질에 관한 합의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미국의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물가 외에 고용을 동시에 고려하도록 한 것을 참고로 한다는 모양이지만 FRB의 이 조항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물가도 안정시키고 성장도 추구하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 조항은 물가와 성장, 다시 말해 물가와 실업률은 정확하게 모순 상충의 관계에 있다는 고백이며 이 모순을 다루기 위해 정치 포퓰리즘으로부터(정부가 아니다) 독립적인 기구로서의 중앙은행을 창설할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다.
지금 우리 한은법이 '물가'만 규정하고 있는 것은 한은법 3조의 '한은의 중립'을 보장하는 지배구조의 논리적 원천이다.
만일 이 조항을 손대게 되면 한은의 지배구조 전체를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행정부 내 중립'이라는 형태로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도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시 말해 외부의 소위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물가'라는 엄혹한 내부의 잣대를 둔다는 것이 제1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1조를 바꾸면 헌법 체계 전부를 손질해야 하지 않겠는가.
논란이 많았던 금융기관 감독권도 그런 경우다.
인허가권을 포함한 포괄적 감독권은 어느 나라에서건 정부 권한이다.
아니 그런 기능을 하는 곳을 정부라고 부른다.
한은은 어떤 법률에 의해서도, 위임행위에 의해서도, 그리고 의사결정 구조에 있어서도 국민에게 책임지는 절차를 갖고 있지 않다.
한은 총재가 선거로 선출되는 것도 아니다.
만일 한은이 감독권을 갖게 된다면 다른 행정부서처럼 기획재정부의 구체적인 예산 통제를 받고 정부의 인사 지휘를 받아야 한다.
청와대 회의에 매주 참여하고 정부의 금리 협의를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금융시스템 안정에 나서도록 법을 고친 영국이 잉글랜드은행 이사회 의장을 재무장관이 지명하도록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잉글랜드은행 총재는 금리결정 외에는 재무장관의 직 · 간접의 지휘를 받는 것이다.
한은은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중립 아닌 독립을, 그것도 '한은 공화국'을 추구한다는 지적까지 받았던 한은법 투쟁의 역사 아니었던가.
물론 조사권은 경우가 다르다.
한은은 당연히 공동조사 혹은 정보 공유의 채널을 가져야 마땅하다.
금융 감독은 금융감독원으로 일원화하되 감독 정보는 재정부나 금융위원회 한은이 온전히 공유하는 것이 맞다.
"정보를 달라"는 한은의 요청에 금감원이 보도자료나 던져준다면 이게 될 말인가.
각 기관이 중복 감독할 이유도 없고 감독원이 금융정보를 온전히 자기의 소유물인 것처럼 독점해야 할 까닭도 없다.
감독권을 빌미로 금융기관 감사 자리나 차지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감독 정보는 온전히 공유해야 한다.
경제위기 시대에 국회가 한은법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주제의 중요성에 따라 공론화의 수준도 달라진다.
한은법은 다시 논의할 것을 주문한다.
--------------------------------------------------------------
▶ 해설
정치 포퓰리즘 차원서 한은법 개정 논해선 안돼
한국은행법 개정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가만히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금융위기에서 한국은행이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한국은행의 목적에 물가안정뿐 아니라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고 금융회사 조사권을 부여하자는 게 법 개정안의 골자다.
정규재 논설위원은 이 같은 논의가 너무 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주제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공론화의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러려면 중앙은행의 본질에 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물가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고 중앙은행은 물가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도록 돼 있다.
정부는 성장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물가 안정을 사수하도록 한 것이다.
금융시장 안정기능은 '성장'과 달리 물가와 상관없지 않느냐고 항변한다면 최근 금융위기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봐야 한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이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한 데서 볼 수 있듯이 금융시장 안정기능도 '성장'처럼 물가와 상충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통화의 유통속도가 느려서,즉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고 경기가 침체돼 있어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지만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해 엄청나게 풀어놓은 돈이 제대로 돌아가게 되면 유동성 과잉으로 당연히 물가 상승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해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해 놨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지는 절차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은행이 성장이나 금융시장 안정을 추구한다면 최근 영국의 법 개정과 마찬가지로 물가 이외의 사안에 대해 정부의 직 · 간접적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고,받아야 한다는 게 이 칼럼의 논지다.
한은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편 조사권에 대해 한국은행이 공동조사나 정보 공유 채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문제다.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 정보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이 모두 공유해야 한다.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못해 한국은행에까지 조사권을 부여한다면 금융회사들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또 하나 늘어나는 꼴이다.
중복 검사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 한국경제신문 4월28일자 A34면
국회의원이라고 마음대로 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설익은 아이디어로 방망이 땅땅 두드린다면 오히려 공해요 법 정신의 훼손이며 그 법에 복종해야 할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판사 출신인 모 국회의원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법에 따라 근엄하게도 판사직무를 수행해 왔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한국은행법 개정 문제도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한마디로 한은법은 국회의원 몇 명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화폐가치를 어떻게 유지하고 지킬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나라경제를 어떤 의사결정 프로세스 위에 놓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다.
한은법 제1조 목적조항을 바꾸는 것이 단순히 한은의 업무수행 절차를 고치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물가안정만을 규정할 것인지, '금융안정 기능'을 명기할 것인지는 중앙은행의 본질에 관한 합의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미국의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물가 외에 고용을 동시에 고려하도록 한 것을 참고로 한다는 모양이지만 FRB의 이 조항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물가도 안정시키고 성장도 추구하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 조항은 물가와 성장, 다시 말해 물가와 실업률은 정확하게 모순 상충의 관계에 있다는 고백이며 이 모순을 다루기 위해 정치 포퓰리즘으로부터(정부가 아니다) 독립적인 기구로서의 중앙은행을 창설할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다.
지금 우리 한은법이 '물가'만 규정하고 있는 것은 한은법 3조의 '한은의 중립'을 보장하는 지배구조의 논리적 원천이다.
만일 이 조항을 손대게 되면 한은의 지배구조 전체를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행정부 내 중립'이라는 형태로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도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시 말해 외부의 소위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물가'라는 엄혹한 내부의 잣대를 둔다는 것이 제1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1조를 바꾸면 헌법 체계 전부를 손질해야 하지 않겠는가.
논란이 많았던 금융기관 감독권도 그런 경우다.
인허가권을 포함한 포괄적 감독권은 어느 나라에서건 정부 권한이다.
아니 그런 기능을 하는 곳을 정부라고 부른다.
한은은 어떤 법률에 의해서도, 위임행위에 의해서도, 그리고 의사결정 구조에 있어서도 국민에게 책임지는 절차를 갖고 있지 않다.
한은 총재가 선거로 선출되는 것도 아니다.
만일 한은이 감독권을 갖게 된다면 다른 행정부서처럼 기획재정부의 구체적인 예산 통제를 받고 정부의 인사 지휘를 받아야 한다.
청와대 회의에 매주 참여하고 정부의 금리 협의를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금융시스템 안정에 나서도록 법을 고친 영국이 잉글랜드은행 이사회 의장을 재무장관이 지명하도록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잉글랜드은행 총재는 금리결정 외에는 재무장관의 직 · 간접의 지휘를 받는 것이다.
한은은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중립 아닌 독립을, 그것도 '한은 공화국'을 추구한다는 지적까지 받았던 한은법 투쟁의 역사 아니었던가.
물론 조사권은 경우가 다르다.
한은은 당연히 공동조사 혹은 정보 공유의 채널을 가져야 마땅하다.
금융 감독은 금융감독원으로 일원화하되 감독 정보는 재정부나 금융위원회 한은이 온전히 공유하는 것이 맞다.
"정보를 달라"는 한은의 요청에 금감원이 보도자료나 던져준다면 이게 될 말인가.
각 기관이 중복 감독할 이유도 없고 감독원이 금융정보를 온전히 자기의 소유물인 것처럼 독점해야 할 까닭도 없다.
감독권을 빌미로 금융기관 감사 자리나 차지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감독 정보는 온전히 공유해야 한다.
경제위기 시대에 국회가 한은법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주제의 중요성에 따라 공론화의 수준도 달라진다.
한은법은 다시 논의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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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정치 포퓰리즘 차원서 한은법 개정 논해선 안돼
한국은행법 개정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가만히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금융위기에서 한국은행이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한국은행의 목적에 물가안정뿐 아니라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고 금융회사 조사권을 부여하자는 게 법 개정안의 골자다.
정규재 논설위원은 이 같은 논의가 너무 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주제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공론화의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러려면 중앙은행의 본질에 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물가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고 중앙은행은 물가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도록 돼 있다.
정부는 성장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물가 안정을 사수하도록 한 것이다.
금융시장 안정기능은 '성장'과 달리 물가와 상관없지 않느냐고 항변한다면 최근 금융위기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봐야 한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이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한 데서 볼 수 있듯이 금융시장 안정기능도 '성장'처럼 물가와 상충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통화의 유통속도가 느려서,즉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고 경기가 침체돼 있어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지만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해 엄청나게 풀어놓은 돈이 제대로 돌아가게 되면 유동성 과잉으로 당연히 물가 상승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해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해 놨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지는 절차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은행이 성장이나 금융시장 안정을 추구한다면 최근 영국의 법 개정과 마찬가지로 물가 이외의 사안에 대해 정부의 직 · 간접적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고,받아야 한다는 게 이 칼럼의 논지다.
한은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편 조사권에 대해 한국은행이 공동조사나 정보 공유 채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문제다.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 정보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이 모두 공유해야 한다.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못해 한국은행에까지 조사권을 부여한다면 금융회사들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또 하나 늘어나는 꼴이다.
중복 검사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