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東夷)족이 발해 연안에서 창조한 문명은 중국은 물론 만주,한반도,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 내는 젖줄이었다. "

발해연안 문명론을 주창해 온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빗살무늬 토기로 대표되는 한반도 신석기시대 문화의 유래지는 시베리아가 아니라 발해만 연안"이라고 강조한다. 이번에 출간된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에서도 그는 우리 민족의 시원인 동이의 뛰어난 문명과 문화를 확인하고 이들이 동북아의 주인이었다고 역설한다.

2007년 여름 탐사대와 함께 24일간 동이의 무대인 지금의 중국 요서와 시베리아 일대를 답사한 그는 요즘 중국 고고학계의 '요하 문명론'이 다민족 통일국가론의 변형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중국 문명이 황하 한 곳에서 발원하지 않고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 혹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면서 발생,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중국 문명을 이룩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요하 문명론'은 용어부터 '발해연안 문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이룩한 주체도 화족(華族)이 아니라 동이족이었다고 그는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의 요서 지역 홍산 문화나 하가점 하층 문화에서 발원한 동이 문명은 본토에서 고조선을 형성하는 원동력이 되고,중원 지역으로 들어가서는 상(商) 왕조를 이룩했으며,그것이 다시 기자(箕子)로 대표되는 상나라 유민 일파에 의해 기자 조선으로 발전했다.

이 같은 동이 문화의 표지적 흔적으로는 석관묘와 석실분,적석총으로 대표되는 돌무덤이 있다. 이후 한민족 고분 문화 주류를 형성하는 이들 묘제(墓制)는 중원 지역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는 동이의 영역에서 한족의 황하 문명보다 더 오래된 문화 유적들이 발굴된 얘기도 소개돼 있다. 그동안 한족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용'을 동이가 훨씬 먼저 숭배했다는 증거까지 들어 있다.

특히 중국 영토 내에 있는 동이의 유적지에서 곰을 숭배한 흔적과 곰 형상 유물들이 출토된 것은 그 문화와 문명을 이룬 사람들이 결국 우리 민족과 잇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