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1676~1759년)은 조선왕조 후기 문화의 황금기인 '진경시대(1675~1800년)'를 살면서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하여 그림으로 그 시대문화를 선도해간 위대한 화가다.

명문 사대부 집안 출신인 겸재는 화가이기 이전에 당시 율곡학파의 중진이던 삼연 김창흡(1653~1722년)의 제자로 율곡 이이(1536~1584년)에 의해 완성된 조선성리학의 적통을 이어 받은 조선성리학자였다. 그래서 사서삼경에 박통하고 그 중에서도 성리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주역에 정통해 당대 제일로 꼽힐 정도였다.

그는 36세 젊은 나이에 그린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岳圖帖)'에서 벌써 주역의 근본인 음양조화와 음양대비의 원리를 이끌어 화면 구성의 근본을 삼았다. 솔숲이 우거진 흙산은 음(陰)으로 파악하여 중국 남방화법의 기본인 묵법으로 처리하고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돌산은 양(陽)으로 파악하여 중국 북방화법의 기본인 필선으로 내리긋는데 흙산이 돌산을 포위해 감싸거나 서로 마주보게 하는 것이었다.

돌산과 흙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우리 산수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기법은 없었다. 이는 필법위주냐,묵법 위주냐 하는 대립으로 끝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던 중국 남북 양대화법이 한 화면에서 주역의 원리에 입각해 이상적으로 융합되는 현상이기도 했다.

이처럼 겸재가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해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출해낼 수 있게 되자 숙종과 영조를 비롯한 국왕은 물론 김창집,이천보,조현명 등 대신들과 이병연,이하곤,조구명 등 일등 문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서서 겸재의 진경사생 여건 조성에 힘을 합친다.

우선 숙종은 (1716년 · 재위42년) 병신년 봄에 41세의 겸재를 관상감 천문학겸교수(종 6품)로 특채하는 전무후무한인사를 단행,벼슬길을 열어준다. 숙종은 겸재를 조지서 별제,사헌부 감찰,한성 주부 등을 차례로 거치게 한 뒤 경상도 하양(河陽) 현감(종 6품)과 청하(淸河)현감으로 내려보내 경상도 66군현의 명승지 및 동해변 관동팔경을 마음껏 사생해 오게 한다.

60세에 모친상을 당한 겸재는 3년상을 치르는 사이 머리 속으로 진경산수화법을 차분하게 정리한 다음 탈상 후인 62세 때 강산(江山) 제일 승경이라는 남한강 상류의 단양팔경을 사생한다. 당시 64세 때인 영조 15년(1739년) 봄에 그린 '청풍계(淸風溪)'는 사실상 진경산수화법을 절정에 올려 놓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영조는 절정에 오른 상승의 기량으로 한강을 오르내리며 강변 풍광을 마음 놓고 그릴 수 있도록 다음 해(1740년) 12월11일 겸재를 현재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의 양천 현령(종 5품)으로 발령한다. 겸재는 이곳에서 70세까지 5년 동안 재임하면서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양천팔경첩','화훼영모첩(花卉翎毛帖)','연강임술첩(連江壬戌帖)'등 대표작들을 쏟아낸다. 최근 서울 가양동에 겸재기념관이 세워진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겸재는 관직에서 물러나고 72세 되는 영조 23년(1747)에 금강산을 다시 찾아가 36년 전 처음 그려 자신의 발신작이 됐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다시 그려 진경산수화법의 완성도를 자랑하니 그 중의 백미가 '금강내산(金剛內山)'이다. 녹색 꽃받침으로 둘러싸인 한송이 백련 꽃봉오리처럼 봉긋이 솟아난 금강산 일만이천봉 백색화강암봉의 표현은 신비와 환상 그 자체다.

이후부터 겸재는 진경산수화법을 추상화시키는 단계로 진입하니 70대 중반에 그려진 '관동팔경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담한 생략과 함축으로 요체만을 표현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76세 때 그린 '인왕제색(仁王霽色)'도 이런 계열의 그림이다. 이런 추상적 경향은 80세를 넘겨 84세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더욱 강화되니 '금강대'와 '정양사' 쌍폭은 비구상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겸재는 250년 전인 영조 35년(1759년) 3월24일 84세로 돌아가 현재 서울 도봉구 쌍문동인 양주 해등촌면(海等村面) 계성리(溪聲里)에 안장되는데 묘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겸재 묘소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면 금년 최대의 문화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겸재 서거 25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겸재화파전'(31일까지)에서는 대표작 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