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전시장이 즐비한 서울 강남 논현동 도산공원 인근에는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4층짜리 낯선 건물이 있다.

28개의 컨테이너를 이어붙인 허름한 모양새가 흡사 화물창고 같다. 건물 안은 바깥 분위기보다 더 이국적이다.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매일밤 술 파티가 벌어지고,한켠에선 낯선 작가의 전시회가 열린다.

홍대 앞이나 뉴욕 할렘가에 있어야 어울릴듯 한 이 건물은 비주류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플래툰(platoon)'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다. 쿤스트할레는 독일어로 '미술품을 소장하지 않되 다양한 현대예술을 전시하는 관'이라는 뜻이다.

2000년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된 플래툰은 전 세계 3500여 비주류 예술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치고 있다. 논현동의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베를린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난달 초 세워졌다. 컨테이너는 이들이 표방하는 비주류문화의 특성을 잘 표현한다. 컨테이너는 구조가 가변적이고 튼튼해 전 세계의 물품 수송과 보관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고정관념을 배격하는 이들의 문화 코드와 잘 맞는다는 얘기다.

톰 부셰만 대표는 "플래툰은 모두를 위한 문화,시민의 문화권리 향상을 추구하는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지도 않고 소장품도 없다"며 "행사를 기획할 때 뜻을 같이 하는 기업의 후원으로 예산을 충당한다"고 말했다.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연면적이 943㎡로 1층에는 홀과 바,쇼케이스,2층은 스튜디오와 북갤러리,3층은 사무실과 세미나실,옥상에는 야외바가 들어가 있다.

현재 2층에 있는 4개의 스튜디오에서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박수미,티셔츠 아티스트 그룹인 TNT크루,스트리트 아티스트인 정크하우스,악기 발명가이자 뮤직프로듀서 매거진킹 등이 입주해 작업하고 있다.

아티스트들은 6개월간 이곳에서 작업한 뒤 완성된 작품을 1층 쇼케이스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플래툰은 작가들을 직접 선정하며 스튜디오 사용료나 쇼케이스 임대료는 없다. 스튜디오 사용료도,전시장과 행사장 임대료도 받지 않는다. 적어도 4년은 유지한다는 게 목표지만 정 운영이 안되면 뜯어내 멕시코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운영진 측은 밝혔다. 현재 독지가 2명과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커피와 술 판매 수익이 수입의 전부다.

문화소통 공간인 만큼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끊임 없이 이어진다. 젊은 사진 작가의 작품을 최대 20장까지 20초씩 소개하는 페차쿠차,세계 5개국 티셔츠 작가 20여 명의 작품 전시회,다국적 디스크자키들이 진행하는 'DJ나이트' 등의 정기이벤트는 물론 국제 티셔츠전,쇼케이스 새 작품 전시,서울 패션리포트 발표가 잇따라 열리는 것.

21일부터는 그래픽 디자이너 손범영의 인간성 회복 메시지를 담은 '더미멘 시리즈'전시와 빨강,검정,흰색의 스탠실 기법을 사용한 VS의 그래피티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