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카 이쿠지로·조동성 교수 대담

"경영대학원(MBA)들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학생들에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겸허함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국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이어졌죠." 지식경영의 대가이자 일본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원 명예교수(74)는 피터 드러커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에 앞서 지난 15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와 가진 대담에서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노나카 교수와 조 교수는 대담에서 "이번 위기를 기본으로 돌아가 기업을 경영하는 이유,나아가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특히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회의 공동 선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피터 드러커 교수의 경영 철학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위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경영자들이 위기를 대처하는데 지식경영을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 노나카 교수=지식경영에 있어서 두 가지의 지식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이어서 논리적으로 표현이 가능한 지식,즉 형식지(形式知 · explicit knowledge)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적이고 직관적,경험적이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지(暗默知 · tacit knowledge)입니다. 도요타의 와타나베 회장이 이야기했듯이 이런 두 가지 지식이 나선형으로 상호작용을 해야 지식경영이 이뤄지죠.하지만 미국 등 서구 기업들은 암묵지를 무시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죠.이 같은 접근은 기업을 단지 돈을 버는 기계로 인식하도록 만들었고 결국 위기로 나타난 것입니다.

▶조 교수=교수님이 1995년에 저서 '지식창조기업'을 출간하신 후 20여년이 지나면서 이제 지식경영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도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제 그것보다 한발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요. 흔히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줄 것인가,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줄 것인가에 대한 비유를 많이 합니다. 저는 지식이 물고기라면 물고기를 잡는 법,즉 지식을 창출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노나카 교수=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연구하던 중 제가 찾아낸 개념이 바로 실천지(phronesis),즉 실용적인 지혜(practical wisdom)입니다. 매우 높은 수준의 암묵지라고 할 수 있겠죠.가치관이나 윤리의식에 바탕을 두고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창의력도 있어야 하죠.이 같은 지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동의 선을 중요시한다는 점입니다. 돈은 선이 아니라 수단이죠.행복이나 자아실현 같은 것들이 선에 해당합니다. 드러커 교수가 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조 교수=단순히 효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철학과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군요. 그렇다면 지식창조기업이 아니라 지혜창조기업이라고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그럼 교수님이 말씀하신 실용적인 지혜를 얻기 위해선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나요? 어떤 리더가 지혜를 갖춘 리더입니까?

▶노나카 교수=첫째 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기업에 있어서 선은 바로 고객의 요구죠.혼다의 창시자인 쇼이치로 혼다 회장은 "기업에 있어 철학이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혼다의 철학은 사회에 즐거움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회는 혼다가 계속 존재하기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죠.이를 위해선 물질보다는 이벤트,즉 경험을 중시해야 합니다.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애플의 아이팟이죠.아이팟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경험,새로운 가치를 전달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사회에 기여한 좋은 사례가 바로 아이팟입니다.

▶조 교수=다시 위기 이야기로 돌아가보죠.철학이나 공동 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 같은 것들에 대한 명상 없는 지식경영은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나카 교수=서구식 경영대학원(MBA)들이 흔히 하는 실수죠.MBA 교육은 형식적인 지식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죠.사실 드러커 교수는 경영학자라기 보다는 인문학자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집에 있는 서재에 가본 적이 있는데 경영학 서적보다는 역사,철학,문학 등 인문학 서적이 훨씬 많더군요.

▶조 교수=굉장히 흥미로운 것은 최근 들어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인문학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일하는 서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CEO들을 위해 인문학 최고경영자과정(AFP)을 개설했는데 6주짜리 교육에 매번 40명의 CEO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이 실용적 지혜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측면에서 이제 아시아 학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전체주의(holistic)적 접근이 서구의 요소환원주의(reductive)적인 접근에 비해 더 창조적입니다. 창조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듯이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탄소,수소,산소 등 모든 요소를 다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원료는 이미 있는 것들을 재조합해서 나오는 겁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무수히 많은 종류의 요소들을 배합하면 수조개의 새로운 원료들을 만들어낼 수 있죠.

▶노나카 교수=동의합니다. 제가 강조하는 '장(場)'의 개념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혼다는 모든 사람들이 쇼이치로 혼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죠.조직 내 모든 사람들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정리=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1935년 일본 도쿄 출생

―1958년 일본 와세다대 정치학과 졸업, 후지전기제조 입사

―197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박사

―1982년 히토쓰바시대 산업경영연구소 교수

―1997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제록스 지식학 특별명예교수

―2006년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후지쓰, 미쓰이물산, 세븐&아이 홀딩스 등 이사 역임

- 저서: '조직과 시장-시장지향의 경영조직론' '경영관리' '기업진화론-정보창조의 매니지먼트' '지식창조의 경영' '아메리카 해병대' '지식창조기업' '이노베이션과 벤처기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