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불의 도시'로 불리는 '카이아도르'.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여자검투사 캐스타닉이 후미진 뒷골목에 들어서자 흉악하게 생긴 몬스터들이 일제히 덤벼든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지만 당황하지 않고 순식간에 검을 꺼내 맞서 싸우는 캐스타닉.검들은 부딪쳐 불꽃을 튀기고 몬스터는 연신 괴성을 질러댄다. 차례차례 적들을 베어 나갔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캐스타닉은 이내 체력의 한계를 드러낸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 캐스타닉은 자신의 가방을 펼쳐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마법의 물약'을 꺼냈다. 그러나 수차례 물약을 '클릭'해도 물약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캐스타닉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버그네요. 얼른 개발팀에 알려서 고쳐야겠어요. "

올 여름 출시될 대작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MMORPG) '테라'의 제작사인 블루홀 스튜디오에서 게임 테스터로 일하고 있는 정소영씨(28)는 요즘 게임 프로그램의 오류인 '버그' 사냥에 한창이다. 테라에 나오는 캐스타닉이라는 캐릭터로 게임을 하면서 오류를 잡아내는 게 정씨의 업무다. 수십명의 프로그래머들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게임이니 만큼 곳곳에 숨겨진 오류들을 찾아내 고쳐서 보다 완벽한 게임을 게이머들에게 선보여야 한다. 길게는 하루 12시간 넘게 게임을 하며 일과 놀이가 혼재된 삶을 사는 그를 만났다.


▼게임 테스터라는 직업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데요.

"어느 기업에나 품질관리를 하는 부서가 있잖아요. 게임 테스터도 일종의 품질관리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를테면 술 만드는 회사에서 술맛을 점검하는 직원들이 있듯이 게임회사에도 게임의 성능을 점검하는 테스터가 있는 거죠.앞으로 나올 게임 또는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에 오류가 있나 없나를 면밀히 점검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


▼원래 게임을 좋아했나봐요.

"어릴 때부터 만화와 게임을 좋아했어요. 방과 후에 제가 사라지면 어머니는 만화방과 오락실,PC방으로 저를 찾아다니셨죠.만화보다는 게임을 더 좋아했어요. 만화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들여다보는 수동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게임은 제가 캐릭터를 움직여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측면이 있잖아요. '킹 오브 파이터'라는 액션대전 게임에서는 우리 동네에서 알아주는 고수였어요. 승률이 한 80% 정도는 됐으니까요. "


▼성인이 되면 좀 달라지지 않나요. 취직도 해야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하잖아요.

"워낙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제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학을 관련 학과(호서대 전산학과)로 진학했고,대학생 시절에는 온라인 게임에 빠졌어요. 진짜 심하게 할 때는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한 적도 있죠.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접속해서 사냥도 다니고 가상의 공간에서 파티도 즐기고 그러면서 밤을 새는 거죠.한번은 친구에게 빨간색 옷 아이템을 맡겨 놓은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저한테 얘기도 하지 않고 팔아버린 적이 있어요. 정말 친한 친구였는데 대판 싸웠죠.내내 게임에 빠져 살면서 무협게임 '시아'의 테스터 생활을 하다가 2년 전에 테라 팀에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