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황영기 회장을 징계한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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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 손실은 무조건 책임지나, KIC 투자손실 등 정부가 더 문제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희한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뒤죽박죽이며 제멋대로다. 반성은 없이 다만 이중잣대를 들이대 피(血)를 흘리는 것으로 오류를 면피할 작정인 모양이다. 예금보험공사가 금명간 징계위원회를 열어 황영기 KB회장 등을 징계하려는 것이 꼭 이 모양이다. 예보공사는 그 자체로 정부다.
징계위원회에 참여하는 인물도 재정부 차관, 금융위 부위원장이다. 황영기 회장에게 내걸린 죄목은 투자 실패다.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고 무모한 투자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의 자산을 1조7000억원이나 축냈다는 이유다.
정부가 8조원의 혈세를 투입한 금융사 CEO로서 이만한 거액을 날렸다면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CEO자리를 내놓는 것이 당연하고 그동안 받았던 고액연봉은 반환해야 당연하다. 그렇게 하면 상황은 종료되는 것일까.
미안하게도 그렇지 않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 금융시장의 오류라면 정부의 금융 정책부터가 월스트리트식 IB를 육성하거나 도입하거나 따라하거나 심지어 흉내내는 것이 전부였다는 점이다.
금융허브가 국책 과제였고 해외 투자를 못하면 바보 축에 속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만들어졌고,은행에 증권 상품 판매가 허용됐고, 외국금융사에 근무한 경력만으로 은행장에 올랐고, 월가에 연줄을 대지 않으면 엽전처럼 취급받았던 것이 지난 10년간의 금융시장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투자공사(KIC)의 설립과 해외투자다. 정부 스스로가 엄청난 기금을 조성해 해외주식 투기에 나섰던 것이다. 한국은행의 보유외환을 강제로 빼앗아 해외주식을 사들이고 그 돈으로도 모자라 국민들의 부채인 외평기금까지 수조원씩 끌어들여 다 망해가는 메릴린치 주식에 무려 20억달러를 퍼부은 것이 바로 작년 초다. 정권이 바뀌고도 이런 버릇은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나서서 골병 든 리먼브러더스를 통째로 사들이는 협상에까지 열을 올렸었다. KIC가 메릴린치 주식에서 얼마나 손실을 봤는지,도대체 어떤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지 정부는 포트폴리오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정부가 우리은행의 해외투자 실패를 문책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황 회장에게 잘못이 있다면 정부 정책을 거부하지 않고 앞장서 부응했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채담보부증권(CDO)이나 신용디폴트스와프(CDS)도 그렇다. 문제의 투자가 이뤄졌던 시점은 2007년 3월까지다. 물론 이런 위험 상품에 아무런 보호장치(캡:CAP)도 없이 거금을 투입한 것은 오류다. 그러나 일부 국책은행들도 같은 시기에 더불어 사들였던 유사상품이었다. 월가 자체가 술취한 나이트클럽에서처럼 최고조의 흥에 들떠 있던 시기였다. 언론조차 마찬가지여서 작년 리먼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번 월가의 대형 IB인수가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라고 떠들어대지 않았나. 회전목마에 올라 흥에 겨워하던 이 같은 오도된 시간들에 대한 아무런 전면적 반성 없이 투자 실패의 결과만을 물어서 황 회장을 문책한다면 이는 코미디다.
투자실패가 사유라면 예금보험공사는 당시 황 회장이 한껏 주가를 올려놓았던 우리금융 주식을 지금껏 팔지 않고 있었던 데 대해 먼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것이야말로 공적 자금을 관리하는 예보의 가장 심각한 투자실패다. 정부의 투기친화적 금융정책에 변화가 있다는 그 어떤 조짐도 없다. 만일 황 회장이 금융계를 은퇴했었다면 예보는 누구를 해임하고 정직시킬 것인가. 황영기 회장과 같이 징계 테이블에 오른 박해춘 행장은 지금 국민연금 이사장이다. 리스크 관리도 못하는 사람에게 국민의 노후를 맡기고 KB회장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누구인가. 왜 이리 뒤죽박죽인가. 분기별로 MOU를 점검해왔던 예보가 지금에야 징계 운운하는 것은 또 무슨 배경에서인가.
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징계위원회에 참여하는 인물도 재정부 차관, 금융위 부위원장이다. 황영기 회장에게 내걸린 죄목은 투자 실패다.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고 무모한 투자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의 자산을 1조7000억원이나 축냈다는 이유다.
정부가 8조원의 혈세를 투입한 금융사 CEO로서 이만한 거액을 날렸다면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CEO자리를 내놓는 것이 당연하고 그동안 받았던 고액연봉은 반환해야 당연하다. 그렇게 하면 상황은 종료되는 것일까.
미안하게도 그렇지 않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 금융시장의 오류라면 정부의 금융 정책부터가 월스트리트식 IB를 육성하거나 도입하거나 따라하거나 심지어 흉내내는 것이 전부였다는 점이다.
금융허브가 국책 과제였고 해외 투자를 못하면 바보 축에 속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만들어졌고,은행에 증권 상품 판매가 허용됐고, 외국금융사에 근무한 경력만으로 은행장에 올랐고, 월가에 연줄을 대지 않으면 엽전처럼 취급받았던 것이 지난 10년간의 금융시장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투자공사(KIC)의 설립과 해외투자다. 정부 스스로가 엄청난 기금을 조성해 해외주식 투기에 나섰던 것이다. 한국은행의 보유외환을 강제로 빼앗아 해외주식을 사들이고 그 돈으로도 모자라 국민들의 부채인 외평기금까지 수조원씩 끌어들여 다 망해가는 메릴린치 주식에 무려 20억달러를 퍼부은 것이 바로 작년 초다. 정권이 바뀌고도 이런 버릇은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나서서 골병 든 리먼브러더스를 통째로 사들이는 협상에까지 열을 올렸었다. KIC가 메릴린치 주식에서 얼마나 손실을 봤는지,도대체 어떤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지 정부는 포트폴리오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정부가 우리은행의 해외투자 실패를 문책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황 회장에게 잘못이 있다면 정부 정책을 거부하지 않고 앞장서 부응했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채담보부증권(CDO)이나 신용디폴트스와프(CDS)도 그렇다. 문제의 투자가 이뤄졌던 시점은 2007년 3월까지다. 물론 이런 위험 상품에 아무런 보호장치(캡:CAP)도 없이 거금을 투입한 것은 오류다. 그러나 일부 국책은행들도 같은 시기에 더불어 사들였던 유사상품이었다. 월가 자체가 술취한 나이트클럽에서처럼 최고조의 흥에 들떠 있던 시기였다. 언론조차 마찬가지여서 작년 리먼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번 월가의 대형 IB인수가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라고 떠들어대지 않았나. 회전목마에 올라 흥에 겨워하던 이 같은 오도된 시간들에 대한 아무런 전면적 반성 없이 투자 실패의 결과만을 물어서 황 회장을 문책한다면 이는 코미디다.
투자실패가 사유라면 예금보험공사는 당시 황 회장이 한껏 주가를 올려놓았던 우리금융 주식을 지금껏 팔지 않고 있었던 데 대해 먼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것이야말로 공적 자금을 관리하는 예보의 가장 심각한 투자실패다. 정부의 투기친화적 금융정책에 변화가 있다는 그 어떤 조짐도 없다. 만일 황 회장이 금융계를 은퇴했었다면 예보는 누구를 해임하고 정직시킬 것인가. 황영기 회장과 같이 징계 테이블에 오른 박해춘 행장은 지금 국민연금 이사장이다. 리스크 관리도 못하는 사람에게 국민의 노후를 맡기고 KB회장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누구인가. 왜 이리 뒤죽박죽인가. 분기별로 MOU를 점검해왔던 예보가 지금에야 징계 운운하는 것은 또 무슨 배경에서인가.
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