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2억% 물가상승, 짐바브웨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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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는 대중민주주의의 함정, 출구전략에도 예민한 감각 필요
짐바브웨는 19세기 식민주의가 남긴 폐해를 21세기가 된 지금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나라다. 영국인 세실 로즈의 이름을 따 지어진 로디지아라는 나라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어 단 것은 1980년이다. 1960년대 혁명가 무가베가 아직 권좌에 있다. 가난한 나라이며, 잘못된 이념과 정책이 어떤 참담한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다. 우스갯소리로 시작하자면 이 나라 국민들은 모두가 억만장자다. 시장에서 계란 3개를 사려면 우선 100억 짐바브웨 달러가 필요하다. 맥주 한 잔을 마시려면 2000만달러짜리 지폐 1000장을 3묶음 내놓아야 하고, 빵 한 덩어리를 사려면 더 큰 부피의 돈을 아예 자루째 내려놓아야 한다. 재작년 인플레이션이 2억 몇천%였지만 지금은 아예 공식 물가상승률을 계산하는 것도 포기한 상태다. 물론 짐바브웨와 같은 하이퍼인플레가 현대사에서 그다지 귀한 것은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독일만 해도 100조마르크짜리 지폐를 발행할 정도였지 않았나. 벽지를 사는 것보다 지폐로 벽지를 바르고, 장작을 사는 것보다 돈을 직접 태우는 것이 싸게 먹힌다는….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상 최악의 인플레는 전후 헝가리에서 기록한 4000조%다. 터키도 한때 모든 국민이 백만장자라는 말을 들었었다. 택시 기본 요금이 100만 터키리라를 기록한다면 모든 국민은 저절로 백만장자가 되고 만다. 1980년대 아르헨티나도 매년 수십억%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정도라면 차라리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참고로 역사상 가장 높은 금리를 기록한 나라는 터키일 것이다. 2001년 한때 터키의 공식 오버나이트 금리는 7000%를 기록했다. 경제학은 이런 상황을 메뉴판 갈아끼우기도 바쁘고 부지런히 은행 다니느라 구두창이 닳는다는 말로 비꼬고 있지만 우리의 삶이 어디 구두창 닳는 정도이겠는가.
짐바브웨가 이런 지경이 되고 만 것은 2000년부터였다. 1%의 백인이 국토의 80%를 점유하는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이들의 땅을 모조리 국유화하면서 이 소극(笑劇)은 막을 올렸다. 내친 걸음이 옮아간 다음 조치는 외국인이 보유한 기업 주식의 절반을 국가에 양도하라는 명령이었고 여기에 반항하면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했다.
이런 조치들이 이어지면서 경제는 무너지고 말았다. 시장에 물건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물자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모든 가진 것을 시장에 내다 팔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당연히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장마당의 물건 가격이 치솟자 이번에는 물건을 "아주 싼값에 팔도록" 엄중한 명령이 시달되었다. (여기까지 듣고 너무 큰 소리로 웃지 마시기 바란다)
실로 대중 민주주의 시대다. 짐바브웨가 아니더라도 대중 추수적 정책은 언제나 이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서민을 위해 우유 가격을 통제했더니 아예 시장에서 우유가 사라졌다'는 프랑스 혁명기 로베스피에르의 아둔한 반시장 정책의 일화는 짐바브웨와 전후 맥락이 너무도 판박이다. 민주주의가 대중에 굴복하면 어떤 상황에 직면하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돈 풀어 거품 만들고 이 거품으로 발생한 금융위기를 다시 돈을 풀어 해결하려는 지금의 경제위기 처방이라는 것도 실은 짐바브웨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정부가 서둘러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인플레를 예상한 국민 각자가 서둘러 자신의 출구를 찾을 것이고 그리되면 악순환이라는 이름의 기계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 돌아갈 것이다. 비정규직법 만들어 근로자를 보호한다거나, 파업으로 고용을 보장하겠다거나, 정부가 국가 부채로 복지를 책임진다는 따위도 실은 짐바브웨에서 오십보백보다. 인간은 짐바브웨인이나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그 본성에서 별 차이가 없다.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