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야스쿠니 신사는 한 · 일 간 뜨거운 정치 사회적 이슈이지요. 일본 정치인들은 매년 8월15일이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요. 제 일본인 친구들은 자신의 감정 표현을 극도로 억제하며 살고 있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게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를 생각하다가 이를 그림으로 들춰내고 싶었습니다. "

서울 견지동의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평화공간 '스페이스& 피스'에서 야스쿠니 신사 그림 전시회를 갖고 있는 작가 홍성담씨(54)는 "야스쿠니 신사가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주제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직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홍씨는 5 · 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문화선전요원으로 활동한 작가. '5월 광주'시리즈로 주목받은 그는 민족해방운동사 그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1997년 광주에서 서울로 온 뒤 현재는 경기도 안산에서 작업하고 있다. 2007년 11월 일본 도쿄,작년 8월 제주에 이어 세 번째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야스쿠니 신사의 미망'.동아시아에서 전쟁의 위험을 문화적 상징으로 승화한 '야스쿠니 신사' 시리즈 15점이 걸렸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 시리즈를 그리기 위해 2006년 일본의 주요 신사 60여곳을 방문했으며 야스쿠니 신사는 20여 차례나 찾았다.

"5년 전에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는데 '전쟁의 독기'가 일본 문화에 감염되고 있음을 감지했어요. 물론 우리 사회 안에도 일제 문화가 상존하고 있고요. 그래서 일본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림을 2006년부터 그리기 시작했지요. "

그는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는 것보다 일본에서 일왕 비판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왕을 대놓고 비판하는 그림을 상당수 걸었는데 일본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며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일본 친구들에게 작품들을 받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림에는 유독 일왕의 이미지와 벚꽃이 자주 나온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의 핵심에 일왕이 있음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천황과 히로시마 원폭'에는 일본 왕가의 보물이라는 거울과 칼,곡옥(曲玉)이라는 이른바 '3종의 신기'를 든 히로히토가 핵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배경 속에 그려져 있다. 3종의 신기는 조잡한 손거울과 문구용 칼,도자기 조각으로 대체시켜 전쟁 중에도 국민보다 신기를 지키는 데에만 신경을 썼던 상황을 풍자했다.

홍씨는 서울 전시가 끝난 후 내년 상반기에 일본 오키나와와 타이베이,내년 가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각각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31일까지.(02)735-581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