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정책운영은 임기 중간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고인은 전임자가 저질러놓은 경제 위기에 대처해야 했다. 그는 빼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과감한 정책으로 단기간 내에 국제통화기금(IMF) 차입금을 상환해냈다. 하지만 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4%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정부의 보호와 과도한 차입금에 의존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던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투자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속도 있는 성장보다는 도산과 인수 합병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 투자로 일관했다. 실질적 투자와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됐다. 경직된 노동 시장과 각종 규제는 투자 의지를 한층 더 움츠러들게 했다.

둘째,생산성 제고에 실패했다. 수치상으로 생산성은 두 자릿수 성장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량 해고와 기업 구조 조정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IT(정보기술)를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하고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혜안을 보였으나 차세대 지식 산업을 선도해 나갈 인력을 양성해낼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소홀히 했다.

셋째,집권 3년차 신드롬에 빠졌다. 대통령은 집권 4년 차부터는 레임덕이 되어 남은 임기 동안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졌다. 1999년 8월 서둘러 위기 극복을 선언하고 이듬해부터는 정상 회담을 개최하는 등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를 강행했다. 그 결과 경제는 청와대의 최우선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임기 말 카드 대란을 초래했다.

현 정부는 국민의 정부의 행보를 반복하는 듯하다.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잠재 성장률을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올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첫째,기업 투자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자산총액 기준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들의 올해 3월 말 기준 유보율은 945.54%로 1년 전보다 60.80%포인트 높아졌다. 올해 1분기 설비투자액은 17조7046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2.1%나 급락했다. 2분기의 경우 외국인 직접 투자가 큰 폭으로 늘었지만 이는 환율 효과라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둘째,생산성 향상도 답보 상태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생산성 증가율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의 증가율인 18.6%의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개선을 위한 조치는 미흡하다. 교육 정책은 지난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대입제도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계 경제 전쟁을 이끌어나갈 인재를 기르기 위한 대학교육의 질적 혁신 유도에는 소극적이다.

셋째,집권 3년차 증후군의 징후가 엿보인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을 막겠다며 개헌론을 들고 나왔다. 대통령은 광복절 연설에서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 회담 추진설은 사그라들줄 모른다. 이대로 가면 경제 문제가 정치권의 관심사에서 밀려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경제 규모를 고려하고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전 세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성장률 제고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반기에 있을지도 모르는 동구경제의 위기나 물가상승을 막기 위한 금리인상이 야기할 수 있는 더블딥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7%대의 성장으로 대한민국을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을 기억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과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지,김 전 대통령을 능가하는 업적을 남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계섭 <서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