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 방식을 시작하기로 함에 따라 의결권 행사가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경영간섭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간섭 논란에서 벗어난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확대도 기대된다.

◆펀드 투자로 의결권 축소

국내 증시의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은 독립된 기금운용본부를 통해 직접 주식을 사들이거나 혹은 위탁 운용사에 투자를 일임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주식의 명의는 '국민연금'이다. 따라서 모든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실제 해왔다. 그러나 펀드 투자를 하면 의결권은 국민연금이 아닌 자산운용사에 넘어가게 된다. 국민연금은 펀드에 출자한 여러 투자자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이 이 같은 펀드 투자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의결권 축소 나선 이유

전 세계 4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현재 250조원 규모로 국내 주식만 34조원가량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KT SK LG전자 KB금융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주요 주주이다. 게다가 국민연금 규모가 오는 2043년까지 2645조원으로 불어나면 주식 비중도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 황인학 전경련 산업본부장(상무)은 "국민연금은 이미 기업 경영진이 눈치를 볼 만큼 의결권을 갖고 있고 그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안정성과 수익성을 최우선시하는 국민연금은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의결권은 주총 안건에 올라온 경우에만 소극적으로 행사해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주총 안건에 대해 반대한 비율은 6.35%로 자산운용사 평균인 0.43%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주총 비율은 24%나 됐다. 공적 연금에 걸맞은 엄격한 의결권 행사 지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경영진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국민연금은 '연금사회주의'(pension socialism · 연금의 보유 주식 증가에 따른 기업경영 참여) 우려를 불식시키지 않고서는 주식 비중을 계속 늘리기가 힘들다고 보고 의결권 축소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수익률이 투자 확대의 관건

국민연금은 조만간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한 뒤 1조원 이내의 소규모로 펀드 투자를 시작할 예정이다. 펀드 투자로도 목표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는지 등을 우선 체크하기 위해서다. 수익률과 관리 감독에 큰 허점이 없다고 판단되면 문제점을 보완해나가면서 펀드 투자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경영간섭 논란과 별개로 국민연금의 골칫거리였던 자본시장통합법의 '5% 룰'에 따른 주식 보유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펀드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은 무척 높다"고 말했다. 5% 룰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어느 회사 주식의 5% 이상을 취득하면 변동 사항을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투자할 때마다 신고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적기 투자가 어렵고 투자 전략도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앞으로 펀드에 투자할 경우 이 같은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박영석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국민연금의 반대로 주총 안건이 부결된 경우는 드물지만 경영간섭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연금이 펀드를 통해 투자할 경우 펀드 운용사가 연금의 투자철학에 맞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장치는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